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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 있는 낡은 집이었다. 장롱과 서랍장이 유일한 세간이었다. 그마저도 곳곳에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었다. 아귀가 맞는 건 하나도 없었다. 조금씩 어긋나있는 세간에 공간은 뒤틀린 듯 보였다.


아이들은 책상과 의자조차 없어 바닥에 배를 깐 채 책을 보고 있었다. 두 아이에게 병든 가장이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었다. 아비의 존재감만으로 인내를 유도하기엔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심장 통증에 새벽에도 뜬눈으로 지새운다는 장진철(가명·54) 씨가 버릇처럼 머리를 감싸 쥐는 이유는 통각보다 죄책감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혼자 아프고 말았을 거라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틀렸다고. 처자식도 아파하고 있노라고.



◆거듭되는 병마에 일상생활도 포기
장 씨는 2007년 충남의 한 화력발전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갑작스러운 구토와 심한 어지럼증을 겪었다. 건강 하나만큼은 자부했지만 곧 온몸이 부어올랐다. 46㎏이던 몸무게가 30㎏ 이상 늘었다. 일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해 급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고향인 울진으로 돌아와야 했다.


꾸준히 약을 먹으며 요양했던 터라 곧 몸도 회복되는가 싶었다. 2010년에는 마을 이장의 권유로 부인 황티엔(가명·36) 씨를 만나 결혼도 했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본 첫 아들은 삶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됐다. 20년 경력의 용접 베테랑인 장 씨는 곧 인근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용접일을 다시 시작하며 인생이모작을 꿈꿨다.


그러나 병마는 다시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이형성 협심증에 삶의 의지마저 뿌리째 흔들렸다. 지속적인 호흡 곤란과 새벽까지 멈출 줄 모르는 경련과 통증을 유발하는 심장질환은 장씨를 잠식해 들어갔다. 그는 "선풍기 바람에도 숨을 못 쉴 만큼 호흡이 어렵고 가슴에 바위를 얹어놓은 것 같았다"며 "밤만 되면 찾아오는 통증에 누군가 온몸을 쥐어짜는 것 같아 잠을 거의 못 잔다"고 하소연했다.


병을 고치려고 강원도는 물론 부산의 대학병원까지 찾았다. 하지만 약 처방 외에 치료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 6년째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근로는커녕 일상생활조차 유지하기가 버거워진 이유였다.


◆ 대물림된 빚에 생존마저 위협받아
빚은 없으니 괜찮다는 위안도 잠시였다. 날벼락 같은 고지서 한 장에 무릎은 꺾였다. 23년 전 부친의 빚을 갚으라는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의 명령이 2018년 그의 손에 쥐어졌다. 6천만원의 빚이었다. 버텨오던 가세는 기울어지다 못해 폭삭 주저앉아버렸다. 그때부터 장 씨는 부인과 아이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갈등에 부인 황 씨는 지난해 5월 집을 나가기까지 했었다. 도망을 쳐서라도 생활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돈을 벌어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모질지 못했다. 두 아들이 눈에 밟혔다. 장 씨는 틈만 나면 아이들을 내세워 황 씨를 찾아왔다. 남편의 멋쩍은 웃음을 보면 그저 안쓰러웠다. 황 씨는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들의 고정 수입은 매월 받는 정부보조금 40만원이 전부다. 텃밭에서 키운 농작물을 1주일에 한 번 시장에 나가 팔아도 3만원을 손에 쥐기가 쉽잖다. 아이들 먹성은 또 어찌나 좋은지, 장 씨 가족은 지역 복지관과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얻어오는 식료품으로 근근이 배고픔을 달래고 있다.


가장은 이 모든 것이 미안하기만 하다. 장 씨는 "오죽하면 베트남 장인장모가 한국에 들어와 고추를 따서 번 돈 200만원을 주고 가더라"며 "내가 오래 못 살아도 좋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라도 해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면서 붉어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주형 기자 coo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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