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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얄꼬…우얄꼬…"
잔가지가 미처 쳐지지 못한 나무들이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경북 포항시의 한 집.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낮게 깔린 탄식이 들려왔다.


천 하나가 쳐진 현관문 너머에는 허재숙(가명‧77) 씨가 우두커니 밖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허리가 아픈지 상체는 한껏 앞으로 숙였고 양팔이 상체의 무게를 오롯이 버텨내는 중이었다. 하도 바닥을 짚어 온 탓에 손바닥은 납작하게 눌려 버렸다.


그녀는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삼 남매를 키워 온 허 씨. 하지만 사업을 하던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은 연락 두절이 됐고 막내아들은 암에 걸렸다.


오래 돌봐 온 손자는 얼마 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손자는 매일 전화를 해대지만 허 씨는 통화 버튼을 쉽게 누르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쉰다.
"이를 어떻게 할꼬…"


◆ 사업 실패로 집 나간 딸, 자폐 있는 손자 홀로 돌봐
홀로 키워낸 자녀들은 성인이 된 후 사업에 뛰어들었다. 딸은 결혼 후 장사에 집중하고자 친정엄마와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딸네의 장사에 손자를 돌보는 것은 오롯이 재숙 씨의 몫이었다.


손자 임병수(가명‧21) 씨를 돌보는 건 유난히 힘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폐가 있었던 손자는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툭하면 친구들에게 맞거나 물건을 뺏기고 돌아왔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떼쓰는 날도 잦았다. 딸네는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감싸고만 돌았고 손자는 점점 무소불위가 됐다.


딸네는 1년 전 사업실패로 집을 나갔다. 부모가 떠나자 손자의 증세는 더 심해졌다. 매일 방안에서 컴퓨터만 하는 게 일상이 된 그는 제멋대로 되지 않으면 할머니 얼굴에 손찌검하기 시작했다. 함께 살고 있던 막내아들이 나서봤지만 건장한 20대 청년의 힘을 감당하기란 어려웠다.


그런 손자는 얼마 전 인터넷이 잘 안 된다며 그만 할머니와 삼촌에게 흉기를 들었다. 경찰의 도움으로 손자는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하루가 멀다고 병원에서 꺼내 달라며 할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 막내아들은 대장암 말기, 돈 없어 진통제로 버텨
모두가 떠난 집에는 재숙 씨와 막내아들 박형섭(가명‧39) 씨 둘이서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딸네가 늘어나는 빚을 돌려막고자 재숙 씨, 형섭 씨의 명의까지 이용해 돈을 대출한 탓에 이들도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장남에게라도 기대볼까 싶지만 큰아들은 필리핀에서 사업을 시작하다 실패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두 모자는 몸까지 아프다. 재숙 씨는 3년 전 허리 척추 수술 후유증으로 아예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그럴 돈이 없다며 진통제만 사 먹으며 고통을 버티고 있다. 형섭 씨는 대장암 말기다. 늦게 찾은 병원에 암은 손 쓸 방도 없이 복막으로 퍼져버렸다. 어렵게 수술을 마쳤지만 얼마 전 뇌동맥까지 찾아왔다. 그 역시 병원비 걱정에 엄마와 같이 진통제로 버티는 중이다.


끼니는 이웃이 가져다준 쌀과 채소 등으로 해결한다. 집세가 밀린 지는 한참이고 전기와 수도 요금도 못 내 가스버너를 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신세다. 형섭 씨가 가끔 장이라도 보러 나가는 날이면 재숙 씨는 불안에 가득 찬다. 귀가 시간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어디 쓰러진 건 아닐까' 걱정이 가득하지만,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는 아들을 찾으러 나설 수 없다.


그런 재숙 씨의 마음 구석에는 떠나버린 딸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짐은 모조리 두고 홀연히 떠나버린 딸네. 추워지는 날씨에 겨울옷이라도 몰래 가져가면 좋으련만 딸은 좀처럼 연락이 없다. 그렇게 엄마는 오늘도 오지 않은 딸을 기다린다.


"죽었다면 전화라도 올 텐데 그런 전화는 아직 못 받았으니 어디서든 살고 있겠지"라며 애써 웃어 보이는 그녀의 미소가 슬퍼 보였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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