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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4일 토요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양혜수(가명·39) 씨는 출근하던 남편 이학영(가명·47) 씨를 배웅하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잠이 막 들기 직전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고민하다 누른 통화버튼 너머로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병원으로 와주세요"


간단한 접촉사고이겠거니 싶어 큰 걱정 없이 찾아간 병원. 응급실에서 마주한 건 발가벗겨진 채 누워있는 남편이었다. 남편을 흔들어 깨웠지만 그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보 장난치지 마. 제발 눈 좀 떠봐" 다친 곳 없이 성한 몸. 단지 정신을 잃은 거라 생각했지만 학영 씨는 깨어나지 못했다.


병명은 '내상성 뇌손상'이랬다. 뇌가 손상됐지만, 출혈이 없어 손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남편이 기적처럼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2년째 눈을 감고 있다.


◆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된 남편, 회사 부도로 빚 독촉까지


빗길 교통사고였다. 그날 아침 남편은 버섯 운송을 위해 회사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2차선을 달리던 남편 차 앞으로 1차선 차량이 끼어들었다. 이를 피하려던 남편이 급히 핸들을 돌렸지만, 빗길에 미끄러진 차는 쉽게 멈출 줄 모르고 이리저리 부딪혔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식물인간이 됐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으로 혜수 씨는 남편을 데리고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그래도 유명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까. 혜수 씨는 돈을 다 털어 부어 재활 치료를 잘한다는 병원을 모두 쫓아다녔다. 2개월을 치료받았지만 남편은 그대로였다. 의사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무 수확 없이 돌아온 집. 때마침 걸려온 친정엄마 전화는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서울 행으로 잠시 맡겨 둔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힘들어 못 돌봐주겠다는 매몰찬 엄마의 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회사가 부도나면서 대출금을 갚으라는 고지서들이 숨통을 죄어왔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품에 안겨 우는 자녀들을 위해 혜수 씨는 이를 꽉 깨물었다. 남편을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급히 일자리를 구했다.


◆ 불안증세 심해지는 두 자녀, 엄마는 "모든 게 내 탓"


혜수 씨의 하루는 쉴 틈 없이 바쁘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재활 운동을 위해 남편 병원으로 향한다. 근육 경직을 막기 위해선 몸을 끊임없이 운동시켜줘야 하지만 키가 180cm가 넘는 남편의 몸을 움직여주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9시부터는 렌터카 회사에, 퇴근 후에는 다시 남편 병원을 찾았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양 씨는 요즘 들어 남편이 느꼈을 가장의 무게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매번 밤늦게 귀가하던 남편은 꼭 야식을 사 와 잠에 든 아이들을 깨웠었다. 그때마다 혜수 씨는 잔소리를 퍼부어댔지만, 이제는 남편의 행동을 본인이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배고플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귀갓길. '남편이 이렇게 우리를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차오른다.


무엇보다 걱정은 아들과 딸이다. 아빠의 사고 후 아들은 불안 증세가 심해졌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 같다며 학교에 좀처럼 가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의 상처가 큰 탓일까. 아들은 외출을 좀처럼 하지 않은 채 방 안에서만 지낸다. 아빠를 유난히 좋아했던 딸은 10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사춘기가 왔다. 말대꾸에, 말투까지 거칠어져 친구들과 갈등도 잦다. 엄마는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제 탓인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얼마 전 혜수 씨는 코로나19로 실직 위기에 놓였다. 병원비, 생활비 등 돈이 나갈 곳은 많은데 일하고 있는 회사는 폐업 준비에 들어갔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양 씨의 눈에는 눈물이 쉴 틈 없이 흘러내렸다. 이 모든 것을 홀로 버텨내고 있는 뜨거운 울음이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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