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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 그곳은 별천지였다. 어릴 적 아버지가 북한 간부였지만 좌천당해 평양에서 함경도로 거처를 옮긴 최연희(가명·43) 씨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돈을 벌고자 중국 접경 지역으로 넘어간 스무 살의 연희 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나라가 제일 잘 살 줄 알았는데….'


그 길로 연희 씨는 북으로 돌아가기 싫어졌다. 5년간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다섯 차례나 탈북을 시도했지만 늘 붙잡혀 북송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지난 2002년, 연희 씨는 마지막 도망을 결심했고 탈출은 성공했다. 그는 중국에서 6년을 떠돌다 라오스를 거쳐 2008년 한국에 들어왔다.


◆ 교통사고로 세상 떠난 남편, 아픈 딸 홀로 돌봐

연희 씨는 서울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며 남편을 만났다. 만난 지 10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고 딸 임유리(가명·10) 양도 태어났다. 넉넉하진 않더라도 소박하고 또 평범하게 잘 살줄 알았다. 하지만 유리는 먹은 분유를 마치 분수처럼 토해냈다.


유리는 단장 증후군 병명을 받았다. 고작 세상에 나온 지 2주도 안 된 유리는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야 했고 배를 열어보니 소장은 10분의 1밖에 남지 않은 데다 신경은 모조리 다 죽어버린 상태였다. 그 후 11개월 동안 입원 생활을 지속하다 배에 커다란 장루 주머니를 하나 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가 네 살 되던 해. 그해도 어김없이 남편은 회사에, 연희 씨는 집에서 유리를 돌보고 있었다. 입원은 안 했지만 유리의 잦은 검진 탓에 연희 씨는 일을 그만두고 딸 간호에 매진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기도 평택에 있던 친구가 놀러 오라는 호출로 연희 씨는 남편을 두고 유리와 함께 오랜만의 나들이에 나섰다.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다음 날 연희 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시누이였다. 전화기 너머 속 그가 흐느끼며 건넨 건 남편의 사망 소식이었다. 아내와 딸이 평택으로 놀러 간 날 밤, 술을 먹고 귀가하다 그만 교통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병원으로 급히 왔지만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부부는 이별했다. 한국 생활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남편이 사라졌다.


◆ 지난해 심해진 딸의 병, 수술비 없어

연희 씨는 이 모든 게 믿기지 않았다. 잘살아 보려 힘겹게 북한을 탈출했지만 하나뿐인 아이는 아프고 남편은 세상에 없다.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던 연희 씨, 그런 그를 살린 건 딸이었다. 연희 씨는 홀로 아픈 딸을 어떻게든 돌봐야 했다. 어린 딸은 손이 많이 갔다. 시도 때도 없이 쫑알거리는 데다 이리저리 가버리는 탓에 연희 씨는 슬픔에 잠길 시간도 없이 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1년이 흘러갔고 대구의 한 의류공장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에 모녀는 거처를 대구로 옮겼다.


회사가 망하면서 일은 잘 되지 않았지만 손재주가 좋았던 연희 씨는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어갔다. 유리를 재워둔 뒤, 집에 달아둔 폐쇄회로(CC)TV에 의지한 채 야간 아르바이트를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자그마한 수선집 하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연희 씨는 일할 때도 집 근처를 떠나지 못한다. 혹여나 유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뛰쳐나와야 하는 탓이다. 유리는 매일 허기가 진다며 음식을 마구잡이로 먹는다. 하지만 음식은 소화되지 못하고 차고 있는 장루 주머니로 물이 돼 모조리 빠져나온다. 혹여나 학교에서 주머니가 터지진 않을까 엄마는 늘 조마조마하다.


그렇게라도 삶이 나아지는가 싶더니 지난해 또 한 번의 불행이 모녀를 덮쳤다. 유리의 남지 않은 소장에 그만 염증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제 소장을 아예 없애야 한다. 하지만 당장 수술비가 없다. 남편의 빚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파산신청을 한 데다 수급비와 수선집에서 번 돈 12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엄마는 발만 동동 구르는 중이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리는 수술로 음식을 못 먹게 될까봐 "엄마, 수술 전에 많이 먹어야 한다"며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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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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