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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가 심해 왼쪽 발가락 세 개를 절단한 한지수(가명·49) 씨. 그 날은 네 달간의 병원 생활 끝에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간만에 찌뿌듯한 몸을 풀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지만 이상하게 숨이 자꾸 찼다. 초저녁에는 정신까지 아득해져 저혈당이 온 건가 싶어 사탕을 찾았지만 지수 씨는 1m 떨어진 냉장고에 손을 뻗는 것도 힘들었다. 가족 없이 홀로 살고 있는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손에 힘이 없어 휴대전화는 툭 떨어졌다.


비슷한 시각, 지수 씨의 이웃 동생 휴대전화가 울렸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나 좀 도와달라"는 지수 씨의 목소리에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는 곧장 지수 씨 집으로 뛰어갔다.


문을 열었을 때 지수 씨의 옷은 식은땀으로 이미 다 젖어있는 데다 의식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지수 씨는 이만 심정지가 왔다. 의사는 가망이 없댔지만 3일 간의 의식 불명 상태 끝에 지수 씨는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 외도 일삼던 남편과 이혼, 당뇨로 발가락 절단


단란한 결혼 생활을 원했던 지수 씨의 꿈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사업을 마구잡이로 벌였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자 지수 씨의 명의뿐 아니라 지수 씨 친정에까지 손을 벌리는 걸 당연히 여기던 그였다. 첫 사위를 많이 예뻐하던 지수 씨 아버지는 그를 믿고 온갖 지원을 해줬지만 돌아온 건 '배신' 뿐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채무는 물론 유부녀와 외도까지 일삼아 결국 지수 씨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지수 씨는 빚쟁이를 피해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경북의 한 시골마을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들과 다시 일어서고자 밤낮 없이 일만 했다. 혹여나 신분이 노출될까 회사에 취직은 못하고 식당 설거지부터, 모텔 청소, 마트 캐셔(계산원)를 도맡아 했다. 돌봐줄 이 없는 아들을 매번 혼자 집에 놔두고 엄마는 제 몸 힘든 지도 모른 채 집을 나섰다.


기를 쓰고 일을 했건만 돌아온 건 망가진 몸뿐이었다. 올해 들어 다리가 계속 붓고 발뒤꿈치가 쓰라렸지만 일을 계속 나가야 했던 탓에 병원 한번 찾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퇴근 후 찜질 뿐. 하지만 상처부위는 시커멓게 변하면서 온갖 살갗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당뇨성 족부궤양'을 판정받은 지수 씨는 발가락을 잘라내야 했다. 게다가 지난 달 심정지로 쓰러진 뒤에는 신장까지 망가져 신장 투석까지 받아야할 처지다.


◆ 집 나간 아들 보고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지수 씨는 매일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게 하루 일과다. 그러다 프로그램에서 다정한 모자(母子) 의 모습이 나오면 그만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너무 보고 싶은 하나뿐인 아들 생각에서다.


24살의 아들은 네 달 전 집을 나갔다. 어릴 적부터 매번 집에 홀로 남겨진 아들은 갈수록 엇나갔다. '내 새끼가 구박을 받을까' 재혼조차 생각하지 않은 지수 씨였지만 아들은 엄마와 둘이 사는 게 괴롭고 힘들었는 지 석 달 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아주 가끔 '돈을 보내달라'는 문자만이 아들의 생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몸은 한 순간에 망가져 버리고, 유일한 핏줄인 아들이 떠나고 나니 그때서야 본인을 스스로 돌보지 못한 후회가 밀려온다. 홀로 아등바등 거리지 말고 진작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볼 걸, 누군가에게 의지해 볼 걸 하는 후회가 가득 하지만 이미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친정에도 차마 연락할 수가 없다. 이혼한 전 남편이 이미 폐를 많이 끼친 데다 장녀인 지수 씨도 잘 살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차마 얼굴을 보여줄 수도 없다.

조금이라도 몸이 나아져 빨리 돈을 벌어야 하지만 몸은 자꾸만 악화된다. 지난번 심정지 이후부터는 순식간에 몸 상태가 나빠져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닐까 불안감도 심해졌다. 병원에서는 앞으로 발목 절단까지 고려하고 있지만 당장 이를 위한 수술비도 없다. 아직 남편이 남긴 채무를 못 갚은 데다 9만원의 월세마저 이제 감당할 수 없다. 그렇게 그는 매일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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