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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는 오후 7시. 경북의 한 작은 읍 소재지의 원룸에서 홀로 거주하는 박혜인(가명·21) 씨가 약 한 알을 입에 털어 넣는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겉옷을 챙겨 입은 박 씨는 매일 저녁 외출에 나선다. 박 씨의 심한 대인기피증을 이겨내기 위한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시골 마을이라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박 씨는 금세 숨이 빠르게 찬다. 간혹 무리 지어 다니는 젊은이들이 박 씨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든다. 인근 빈 공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해보지만 외출 전 먹은 우울증약이 쉽게 듣지 않는지 발걸음을 다시 집으로 돌린다.



◆부모 이혼 뒤 성추행 당해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커 온 삶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박 씨가 6살 무렵 이혼했다. 이유도 잘 모른다. 아빠의 가정폭력이 있었고 그런 아빠를 감당하기 힘든 엄마는 집을 나갔다는 게 지레짐작 가는 내용이다. 아빠, 오빠와 함께 친할머니 집으로 들어가게 됐고 그곳에서 한참 엄마를 그리워했던 것 같다.


할머니 집도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할머니는 엄했고 아빠도 다정치 못했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던 오빠도 박 씨를 때렸다. 이유도 모른 채 휘두르는 빗자루에 무릎에서 피가 날 정도로 박 씨는 맞아야 했다. 학교에선 왕따의 삶을 살았다. 초등학생 3학년 즈음 몸이 아팠는지 수업 중에 구토를 했는데 그 이후 친구들이 박 씨 곁에 오지 않았다. 외롭고 힘든 마음은 털어놓을 곳이 없어 속앓이를 하며 억지로 삼켜내야 했다.


고등학생 무렵, 오빠는 한 축구동호회에서 알게 된 40대 아저씨를 잘 따랐다. 오빠는 아저씨 집에 거주하는 날이 많았고 박 씨 역시 아무 의심 없이 오빠가 있는 그곳으로 자주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모두가 자는 사이 그는 박 씨의 몸을 강제로 더듬었고 2년 동안 박 씨에게 강제추행을 일삼았다. 오빠에게 말을 해볼까 싶었지만 그를 너무 믿고 있는 오빠의 모습에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자해 반복되는 삶


숱한 자해가 연속된 나날을 보냈다. 살기 싫었고 살아야 할 이유도 몰랐다. 할머니는 여전히 잔소리가 심했고 아빠는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몰랐다. 차라리 혼자 지내는 생활이 편하겠다 싶어 성인이 된 후 홀로 방을 얻어 나왔다. 하지만 생활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대학교에도 진학했지만 적응도 힘들었다. 한 친구가 박 씨를 험담하는 모습을 보고 난 후부터는 더 집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돈을 벌기조차 쉽지 않아 방세는 자꾸만 밀렸고 결국 집주인은 박 씨를 쫓아냈다.


그런 박 씨에게 처음으로 도움을 준 어른은 아르바이트 사장이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으로 돈을 벌어가던 박 씨는 사장을 알게 됐고, 박 씨의 형편을 눈치 챈 그는 본인이 계약해둔 한 원룸에 박 씨가 거주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무렵 용기 내 몇 년을 참고 참았던 피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려 신고를 하게 됐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를 잠식해버린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성추행 심리치료 센터에서도 사람이 무서워 식은땀이 나고 현기증이 인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또 사람들이 본인을 싫어할까 화장실에 들어가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나오기도 한다.


박 씨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원룸마저 이제 떠나야 할 처지다. 도움을 준 사장님의 집 계약이 끝나게 되면서 더 이상 무료로 거주할 수도 없게 됐다. 하지만 소득이라곤 기초생활수급비 50만원이 전부. 할머니와 오빠도 수급자 생활을 하고 있고 아빠는 올해 교도소에 수감됐다. 심한 할머니 잔소리로 아픈 상태가 더 심해질까 할머니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불안함이 커서일까. 얼마 전 박 씨는 꽤 오랫동안 참아왔던 자해를 또 해버렸다. 손등에 붙여진 밴드를 만지작거리던 박 씨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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