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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이었다. 김민희(가명·28) 씨를 만난 날, 그는 남편에게 맞아 눈동자가 돌아간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채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의 인생은 지금껏 불행의 연속이었다. 강도상해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을 때 그의 나이 고작 9살. 아버지의 방임으로 14살 무렵부터는 보육원을 전전했다. 그런 아버지도 민희 씨가 19살 될 무렵 중풍으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애잔한 삶은 도돌이표에 갇혀 반복되고 있다. 주민등록증이 말소돼버린 오빠는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 넘어 생사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민희 씨는 아직 서른 살이 안됐지만 실패한 결혼이 낳은 가정폭력 후유증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 가슴에 각인된 폭력의 기억

민희 씨는 7년 전 보육원에서 만난 전 남편과 아이를 가지게 돼 결혼했다. 그러나 그의 외도로 1년 만에 이혼했다. 22세 여성이 돌이 갓 지난 아기를 도맡으며 생계를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젊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도 불가능했던 그 즈음, 아이를 맡아달라고 찾아간 남편이 재결합을 요구해 다시 살림을 차렸다. 곧이어 둘째 아이가 태어났지만 민희 씨가 그토록 바랐던 단란한 가정은 이번에도 꾸릴 수 없었다.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 탓이었다. 남편은 툭하면 욕설과 손찌검을 일삼았다.



결국 지난해 11월 사달이 났다. 술을 마시러 나가려는 걸 말렸다는 이유였다. 그는 "아기를 안고 있는데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뺨을 때리더니 넘어뜨린 후 발로 얼굴과 몸을 수십 차례 밟았다"고 했다.


폭행은 끔찍했다. 민희 씨의 얼굴 광대, 코, 안구 등 얼굴 곳곳에 골절상을 입었다. 수술비만 1천200만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완치는 어려웠다. 병원에서는 잃어버린 후각과 미각이 돌아올지 장담을 못할 지경이라 했다. 눈도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치유가 힘든 건 마음이다. 매일 밤 남편에게 맞아 죽는 악몽에 시달린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허공으로 손을 뻗치기만 해도 지레 겁에 질려 몸이 움츠러든다. 그는 "병원과 복지단체에서 도와줘 1차 수술비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잘 모르겠다. 안과에 한번 갈 때마다 5만 원씩 들어 간단한 진료도 사실 많이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 가슴에 새겨둔 단란한 가정의 꿈
민희 씨의 두 딸은 폭행 사건 이후 줄곧 아동보호센터에 있다가 최근에야 민희 씨가 있는 여성보호시설로 오게 됐다. 당장 내년이면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라 불안정한 주거환경이 못내 신경 쓰인다. 이혼을 결심하게 됐지만 이마저도 남편이 거부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민희 씨는 "남편이 '교도소에 들어가면 양육비를 절대 못 준다'고 폭행 사건의 합의를 요구하고 있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민희 씨에게는 평생의 꿈이 있었다. 평범하고도 단란한 가정을 갖는 것이었다. 현실은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별다른 직업이 없던 남편은 군복무 시절 몸을 다쳐 매달 정보보조금을 받았지만 대부분을 술값으로 탕진할 만큼 경제적으로는 무책임했다. 생활비를 주지 않아 민희 씨는 임신 중에도 택배 보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만삭일 때도 전선 배관을 집에 가져와 자르는 부업을 했다. 출산 후에는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단기 편의점, 식당일에 나섰다.


민희 씨는 "산후조리원은 꿈도 못 꿨다. 그 흔한 아기 머리띠 하나 못 사준 게 마음에 사무친다"며 "더 이상은 이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는데, 두 딸만큼은 안전하게 키우고 싶은데 이마저도 나한테는 지나친 욕심인 것 같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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