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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화장 전문가가 꿈이었던 소녀는 몸과 마음의 병만 가득 남은 40대 싱글맘이 돼 눈물만 흘리고 있다. 이소영(40·가명) 씨는 20살 무렵 경북에서 홀로 상경해 화장과 손톱관리(네일아트)를 배웠다. 5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고시원을 전전하며 버티던 7년간의 타향살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는 대구로 돌아와 새 시작을 다짐했지만 이후 온갖 불행이 기다렸다는 듯 찾아왔다.


◆ 출산 후 드러난 남편의 과거
이 씨는 대구에 왔던 지난 2007년 원룸 앞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괴한으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그로부터 몇 주간 한 차량이 이 씨의 집 근처를 배회하며 뒤를 밟는 일이 이어졌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그는 수개월간 집 밖에도 제대로 못 나갈 만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전 남편과의 결혼은 '여자 혼자'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고 싶었던 것이 컸다. 그러나 전 남편은 항상 이 씨에게 무심했다. 아들 대희(8·가명)가 태어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씨는 출산 후 전 남편의 인터넷 계정을 확인하다 그가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혼남녀가 모인 인터넷커뮤니티에서 재혼사실을 숨기고 활동하고 있었던 것. 특히 그는 이 씨와 결혼하기도 훨씬 전에 '사고가 나 결혼 집들이를 미뤄야겠다' 등의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 씨는 "결혼 전에도 남자 혼자 사는 집치고는 과한 세간에 정작 결혼식 하객은 거의 없어서 의아했다"며 "알고 보니 첫 결혼이 아니었더라"고 말했다.


2년간 진행된 법정다툼 끝인 2014년 혼인무효가 성립됐지만 결국 또 상처만 남게 됐다. 전 남편은 혼자 남은 이 씨에게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청구해 5천만원을 빚지게 했다. 이 씨가 그의 신용카드를 도용했다고 주장한 것. 이 씨는 "전업주부가 남편 카드로 살림을 사는 것도 도용이 되느냐. 억울하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도 없어 대응을 제대로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썩어가는 넓적다리 관절에 공황장애까지 앓아
이 씨는 전 남편과 소송 중일 때 이미 다리 통증이 심했다고 했다. 대희가 생후 6개월쯤 됐던 2012년 9월부터 왼쪽 사타구니가 저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왼발을 절뚝거리게 된 것이다. 그는 1년간 소염진통제로 버티다 걷지 못할 지경이 돼서야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 3기 진단을 받았다. 이 질환은 골반과 맞닿은 다리뼈 위쪽에 피가 안 통해 뼈 조직이 죽으면서 여러 통증을 동반하는 병으로 정확한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이 씨는 마약성 진통제로 버티다 2014년 10월 인공관절을 넣어야 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햇빛이 닿으면 전신에 수포가 생기는 심각한 알레르기 부작용만 얻게 됐다. 이 씨는 최근 오른쪽 다리에도 똑같은 증상이 찾아와 망연자실한 상태다. 전 남편에게 느낀 배신감과 걷지 못하게 하는 희귀병은 이 씨의 정신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그는 현재 4년째 매일 11개 종류의 정신과 약으로 버틸 정도로 극심한 정신불안과 공황장애를 호소하고 있다.


◆ 불안한 환경에서 자란 아들
몸과 마음의 병으로 정상적으로 살기 어려운 이 씨에게 아들 대희는 짐이자 아픈 구석이다. 아들이 걷기도 전에 떠나버린 전 남편이지만 이 씨는 차마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 대희가 잦은 돌발 행동으로 지난해 8월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 진단까지 받은 터라 행여나 악영향을 미칠까 봐서다. 대희는 아직 아빠가 멀리 일하러 가 언젠가 다시 올 것으로 믿고 있다. 이 씨는 "아들이 4살 때는 충동적으로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들어 큰일 날 뻔 했다"며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충동행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대희는 학습능력이 떨어져 언어·발달 등 다양한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생활고는 대희의 유일한 사교육이었던 학습지를 끊어야 할 정도로 가혹하다. 모자가 매월 지원받는 80만 원의 기초생활수급금으로는 월세와 공과금, 식비 등을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이들의 집 쓰레기통에는 라면 봉지만 가득했다. 장을 봐와 제대로 된 음식을 하기에는 주머니 사정도, 엄마의 건강도 온전치 못한 것이다. 이 씨는 "아들이 두 발로 홀로서기를 할 때까지 내가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정말 너무 힘들다"며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하는데도 왜 자꾸 무서운 것만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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