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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로봇 날개가 떨어졌잖아." 손자 성진(가명·5)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흐엉(가명·65) 씨는 그저 웃는다. 그는 아이들을 놔두고 연락이 닿지 않는 아들 부부가 사무치게 원망스럽다가도 손주 재롱을 보면 '내가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매일 다짐한다. 베트남 할머니와 한국 손주, 할머니는 비록 언어가 달라도 손주들에게 온 마음을 꺼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닥친 생활고는 마음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생계난에 비자 만료까지 겹쳐 흐엉 씨는 하루하루 걱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 자식 두고 잠적한 아들 부부
지난해 11월 베트남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 아들 부부가 영국에 있다니, 흐엉 씨는 아직도 황당하다고 했다. 토끼 같은 애들을 놔두고 가면 어디를 갈까. 며느리 응옥(가명·38) 씨가 베트남에서 '더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다'고 전화했을 때도 잠깐의 투정인 줄로만 알았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바람도 쐬면 한결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흐엉 씨는 "지난해 12월 동네 공무원이 출입국사무소에 사건을 알아보더니 '아들 부부가 영국에서 불법체류 중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줬다"며 "잠적을 감춰버려 결국 실종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흐엉 씨는 지난 2015년 손자 성진이(5)가 태어나고 나서 아들 집에 와서 살림을 도왔다. 용접일을 하는 아들은 항상 돈타령을 했다. 흐엉 씨는 "아들이 '이래서 언제 집을 사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며 "항상 근면 성실하고 착한 아이였는데 왜 이렇게 무책임하게 가버렸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흐엉 씨의 체류비자는 오는 10월 끝난다. 실종된 아들 부부의 재신청이 없으면 초청비자를 연장할 수 없다. 한국에 계속 체류할 수도, 그렇다고 국적이 다른 손주를 베트남으로 데리고 가는 것도 법은 허락하지 않고 있다. '할머니가 떠나면 손주가 보육원에 입소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흐엉 씨는 부부의 소식을 미친 듯 수소문하고 있지만 여전히 연락은 닿지 않는다.


◆ 말 안 통하는 손주들 마음으로 통하려 해도
사실 맏이 희영(가명·10)이는 흐엉 씨의 친손녀는 아니다. 아들 밍(40·가명) 씨가 지난 2015년 결혼할 당시 며느리가 데리고 온 딸이다. 며느리 응옥 씨는 이미 2007년 한국인과 결혼해 남매 2명을 뒀지만 국적을 취득하고서는 곧장 남편과 갈라섰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흐엉 씨는 희영이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다. 친오빠와 아빠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졌고 이제는 엄마마저 떠나버렸다. 열살 아이가 감당하기는 너무 큰 아픔이었을까. 현재 손녀는 지적 장애와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도 담임선생님은 "희영이가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는 전과 달리 깨끗해지고 학교에도 빠지지 않고 나왔다"고 말했다.


부닥친 생활고는 손녀 건강을 걱정할 여유도 없게 한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혼자 아이 둘을 돌보려니 그저 눈앞이 깜깜하기만 한 탓이다. 흐엉 씨는 아들 부부의 반지하 방에서 손주들과 라면으로 2개월을 버텼다. 그나마 얼마 전 집 근처 행정복지센터와 연이 닿아 긴급 생계비 지원과 쌀 등 생필품을 지원받고 있어 가까스로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흐엉 씨는 "손주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유치원 비용마저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주형 기자 coo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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