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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앞에 세상은 성난 파도를 맨몸으로 맞선 것만 같이 아찔했다. 저만치 나아가는 남들을 먼발치에 서서 구경만 했다. 서서히 멀어 버린 눈과 귀는 황광자(56) 씨의 손발을 묶어버리더니 마음마저 잠식해 들어갔다.
그런 그에게 집의 존재는 '내가 나일 수 있는 유일한 곳', 손가락질 받을 일 없이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었던 곳이다. 무던히도 애정을 쏟았던 그 작고 오래된 한옥이 한 순간의 불로 반나절 만에 잿더미가 됐다. 어엿한 안주인이었던 그는 이제 오갈 곳이 없다. 까맣게 타버린 가슴을 움켜쥐며 집 근처를 서성거릴 뿐이다.

◆ 닫힌 귀와 눈에 정신까지 멀어
9남매 중 넷째 딸로 태어난 황 씨는 유년시절 고열을 앓은 후 귀가 먹었다고 했다. 후천적으로 시력도 잃게 돼 장애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장애는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친형제 4명 모두 경중이 다를 뿐 청각·시력 장애를 앓는 탓이다.


양조장 인부였던 아버지 밑에 딸린 식구들만 줄줄이 사탕. 황 씨는 10살 무렵 친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를 맞았다. 한 입이라도 줄어야 나머지 가족이 살 수 있는 형편이었다. 이복동생들이 태어나면서부터는 귀머거리 의붓딸에게 주는 눈칫밥도 아까웠을까. 황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식모살이를 떠났다.


그는 지난 1989년 고향 경북 문경시로 내려와 부모가 점 찍어준 남자와 결혼했다. 외동아들인 남편(57)은 지적 장애가 있지만, 일용직 보일러 설치 보조로 일하면서 가정에도 충실했다. 곧이어 딸이 태어났고 소소한 행복이 감돌던 일상은10년도 안 돼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1999년 아들이었던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2세가 장애를 앓을까 임신을 우려한 친척들의 만류에도 출산을 강행한 황 씨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우울증을 동반한 정신질환이 찾아왔다. 황 씨는 20여 년 동안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간 우울증은 조현병으로 번졌다.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없어 기억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은 탓일까. 황씨는 둘째가 곁을 떠났을 때의 그 시린 느낌을 잊지 못한 채 20년째 몸서리치고 있다. 황 씨는 "앞이 안 보여 성당을 갈 수 없게 되고 나서 부터는 집에서 매일 안정을 빌었다"며 "눈을 떠도 감아도 아이의 모습이 잔상에 남는다"고 말했다.


◆ 반나절만에 다 타버린 20년 터전
지난 10일 오전 10시30분, 비가 내렸다. 남편도 그날은 일이 없어 방에서 선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난다 싶어 방 밖으로 나왔지만 눈과 귀가 모두 침침한 황 씨는 화재를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부는 다용도실 전선에서 시작된 불이 화장실과 대문을 다 태울 무렵 간신히 몸만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황 씨는 "남편이 대문에 불이 붙었다고 소리쳤다"며 "담을 타 넘다 넘어져 온몸이 긁히고 타박상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황 씨 부부는 현재 문경의 산골짜기에 있는 남동생 집에 머물고 있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온전치 않은 정신에도 내 힘으로 먹고 살려 했던 부부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공시지가 3천만원의 이 집이 유일한 재산이었다. 황 씨의 장애수당 27만원, 남편이 비정기적으로 벌어왔던 일당을 합쳐도 월수입 90만원을 넘지 않는 달이 태반이다. 저축은커녕 먹고살기도 빠듯했다. 유일한 피붙이인 딸(32)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제 앞가림을 하기도 바쁘다.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던 황 씨의 얼굴이 딸 이야기에 처음으로 환해졌다. "우리 딸 서울 백화점에서 물건 팔아요. 아주 예뻐. 시집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집이 타버린 뒤로는 이제 딸이 문경에 안 올까봐 걱정이야… "


이주형 기자 coo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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