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캠페인 보기





다섯 식구가 살아가는 14평 빌라. 변변찮은 장롱 하나 없는 집은 세간을 아무리 반듯하게 정리해도 창고를 방불케 했다. 작은 냉장고 안에서는 삭은 김치 쉰내가 진동했다. 김형건(가명·26) 씨는 다리가 불편한 엄마 장세정(가명·48) 씨를 대신해 이 집안의 가장을 자처하고 있다. 1조원을 줘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엄마, 그런 엄마를 되찾았지만 김 씨의 정신은 급속도로 고장났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당장 일을 해야 하지만 그는 아직 과거의 기억에 시달린 채 세상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 엄마 찾아 흥신소에 연락
김 씨의 부모가 갈라선 것은 1999년, 갖은 폭행을 일삼던 아빠(50)가 19살짜리 새엄마를 데리고 온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아빠의 협박에 못 이겨 '아빠 곁에 남겠다'고 말했던 것이 친엄마 장 씨와의 12년간 이별이 될 줄 다섯 살배기는 미처 몰랐다.


새엄마와 성매매 알선 업무를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아빠는 수시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집도 없었다. 매일 밤 모텔을 전전하며 아빠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 김 씨는 10살에야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한글도 제대로 못 뗀 채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가 친구들과 섞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던 2011년, 새엄마는 뭉칫돈을 들고 사라졌다. 그것도 다른 남자와 새 살림을 차린 것이었다. 아빠는 매일 술독에 빠졌다. 김 씨가 친엄마 장 씨를 찾으러 나선 이유였다. 친엄마가 돌아오면 아빠가 정신을 차리고 새 삶을 살 줄 알았다고 했다. 신문광고에서 우연히 본 흥신소에 연락해 엄마를 찾아달라고 사정했다. 당시 엄마는 또 다시 이혼 후 이복동생 2명을 홀로 키우고 있었다.


엄마 장 씨는 그렇게 전 남편과 잠시 재결합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뒤 장 씨는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전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 아들 김 씨가 기계처럼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주면서도 온 몸을 떨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 탓이었다.


장 씨는 "아이를 방치하고,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얼마나 때렸는지 차마 입에 담기 힘들다"며 "형건이는 내가 다시 떠날까봐 아빠가 잘 키워줬다고만 했는데 전 남편의 폭력성을 모를 리가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 눈 감으면 과거 기억에 두려움 엄습
김 씨의 정신질환은 성인이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6년 입대 후에도 우울증 수치가 너무 높아 수차례 군병원을 오가다 결국 입대 3개월 만에 강제 전역했다. 최근 4년간 그의 강박증, 경계성 인격장애, 우울 장애, 불안장애는 더욱 심해졌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온몸이 굳고, 손이 떨리고 침이 마른다. 모두가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리고, 검은색 물체가 계속 눈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 같은 환각도 수시로 나타나 일상생활이 힘들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강박증 탓에 하루도 제대로 일을 못 하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기초생활수급금 180만원으로는 다섯 식구가 밥을 먹기도 빠듯하다. LH전세대출금, 월세, 관리비, 카드빚, 다섯 식구 통신비만 내도 한 달 100만원이 우습게 나간다.


최근 인격장애 판정을 받은 남동생(20)이 올해 성인이 돼 수급금마저 40만원이 차감될 예정이다. 기숙학교를 다니는 여동생(17)에게 다달이 드는 기숙사비 16만 원도 부담스럽다. 골수염 후유증으로 걸음걸이가 불편한 엄마는 4만원 짜리 통증 주사를 맞는 것도 부담스러워 포기한다.


김 씨는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는 "매일 엄마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데 너무 아파하시니까… 빨리 돈을 벌어서 엄마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게 소원"이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주형 기자 coolee@imaeil.com


가정복지회는 매일신문과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지원하는 '이웃사랑'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구경북 거주자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주세요. 전화 053.287.0071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