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식구가 살아가는 14평 빌라. 변변찮은 장롱 하나 없는 집은 세간을 아무리 반듯하게 정리해도 창고를 방불케 했다. 작은 냉장고 안에서는 삭은 김치 쉰내가 진동했다. 김형건(가명·26) 씨는 다리가 불편한 엄마 장세정(가명·48) 씨를 대신해 이 집안의 가장을 자처하고 있다. 1조원을 줘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엄마, 그런 엄마를 되찾았지만 김 씨의 정신은 급속도로 고장났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당장 일을 해야 하지만 그는 아직 과거의 기억에 시달린 채 세상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 눈 감으면 과거 기억에 두려움 엄습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온몸이 굳고, 손이 떨리고 침이 마른다. 모두가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리고, 검은색 물체가 계속 눈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 같은 환각도 수시로 나타나 일상생활이 힘들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강박증 탓에 하루도 제대로 일을 못 하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최근 인격장애 판정을 받은 남동생(20)이 올해 성인이 돼 수급금마저 40만원이 차감될 예정이다. 기숙학교를 다니는 여동생(17)에게 다달이 드는 기숙사비 16만 원도 부담스럽다. 골수염 후유증으로 걸음걸이가 불편한 엄마는 4만원 짜리 통증 주사를 맞는 것도 부담스러워 포기한다.
이주형 기자 coolee@imaeil.com 가정복지회는 매일신문과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지원하는 '이웃사랑'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구경북 거주자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주세요. 전화 053.287.00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