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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가명·25) 씨는 12시간이 넘는 밤샘 근무 뒤 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침을 먹이고, 빨래할 옷을 챙기는 태희 씨의 얼굴은 무척 수척해 보였지만 동생 태인(가명·23) 씨가 웃자 누나의 입가도 씨익 올라갔다. 남매가 서로의 손에 의지한 채 보육원의 문턱을 넘은 것은 각각 9살, 7살 무렵. 인생은 불행의 연속이었지만 버티고 버티면 좋은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가혹하기만 하다. 어느 날 동생이 쓰러졌다. 골수기증을 받지 못하면 더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로 하루 벌어 하루 입에 풀칠하는 이들에게 수술비 800만원 마련은 절망적이기만 하다.


◆ 갑자기 찾아온 재생불량성 빈혈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한창 어리광을 부려도 모자랄 나이.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남매 앞에 갑자기 펼쳐진 보육원 생활은 정글 같았다. 악착같이 버티던 태희 씨와 달리 태인 씨는 항상 불안정했다. 폭력의 상처가 컸던 탓일까, 보육원과 학교에서도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는 19살 무렵 학교를 자퇴하고 보육원에서 나왔다. 막상 홀로서기를 했지만, 중졸 미성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는 3년간 음식배달로 일당 5만원씩 벌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지난해 12월, 손가락이 얼 것처럼 춥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온몸에 검붉은 반점이 두드러기처럼 번지고 심한 열이 났다. 몸은 물 먹은 스펀지처럼 처졌다. 몸살이 도진 줄 알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결국 대학병원까지 와서야 재생불량성 빈혈임을 알게 됐다. 이 병은 피를 만드는 세포의 장애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정상적으로 생성할 수 없는 혈액 질환이다. 골수기증을 받지 못하면 1년 내 사망할 거라는 진단에 태인 씨는 떨면서 누나에게 연락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두 번 버림받은 날, 동생 살릴 각오 해
당시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일하던 태희 씨는 동생의 연락을 받자마자 두 달 동안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간호를 도맡았다. 그러나 태인 씨가 자꾸 쓰러지는 탓에 지난 2월부터는 계속해서 동생 곁을 지키고 있다. 그는 골수기증을 자처했지만 적합성 검사에서 불일치 판정을 받았다. 간절한 기도가 통했을까. 기적처럼 기증자가 나타났다.


아빠의 얼굴은 기억조차 안 난다.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고서 곧이어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 태희 씨는 "엄마 아빠 모두 재혼을 해 가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엄마가 '네가 뭔데 걔를 도와주느냐. 내 아들 아니다'며 매정하게 전화를 끊는데 두 번 버림받은 기분에 대구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펑펑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떻게든 수술비를 마련해야 했다. 태희 씨는 모아왔던 적금을 깨고 3금융권 대출을 받았다. 200만원을 빌리는데 내야 할 이자만 100만원 가까이 됐다. 앞으로 치료비가 얼마나 나올지 예상할 수 없는데 당장 생활비도 없는 상황. 그는 지난달부터 대구 동성로의 한 음식점에서 매일 오후 6시부터 12시간씩 주방 일을 한다. 이것도 코로나19 사태에 가게를 찾아가 빌고 빌어서 가까스로 얻은 일자리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고 컸으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됐을까. 태희 씨는 동생을 보면 항상 가슴이 저민다. 그는 "나는 옆에 있던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왔다"며 "성격이 모난 동생은 그런 사람조차 없었다. 동생이 받을 줄도 알고, 고마워할 줄도 알고, 남에게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커 나가길 바랬는데 아직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주형 기자 coo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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