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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신장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가야 했던 엄마 김유순(가명‧54) 씨는 마음이 착잡했다. 원인 모를 발목 염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온전치 않아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긴 어려웠다. 택시를 타야 했지만 유순 씨가 가진 돈은 5천원이 전부. 30분을 망설이던 유순 씨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5천원만 보내줄 수 없을까…"


딸이 보내온 2만원. 택시 창문에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비가 꼭 자신의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 같았다. 어쩌다 삶이 이렇게 돼 버린 걸까.
눈치 없이 계속 아파 오는 자신 몸이 원망스럽다.


◆ 아이 잃고 와르르. 오랜 신장 투석으로 또 망가진 몸
유복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유순 씨. 대기업에 입사한 남편을 따라 경북 구미에 터를 잡았다. 첫 아이가 생겼지만 임신중독증이 심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아이를 7개월 만에 낳았다. 하지만 한 달 뒤 아이는 엄마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퇴원 후 유순 씨가 마주한 건 아이가 머물렀던 빈 인큐베이터뿐이었다.


유순 씨의 건강이 악화된 게 그때부터였을까. 아이를 잃고 심신은 피폐해져 갔다. 아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순 씨의 오른쪽 눈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의사는 망막 변성이랬다. 수술 후에도 안압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결국 급성 녹내장까지 겹쳐 오른쪽 눈은 실명해 안구를 적출해야 했다.


5년 뒤 어렵게 둘째가 생겼다. 하지만 임신중독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둘째는 건강히 태어났지만 유순 씨의 건강은 계속 악화됐다. 신장은 다 망가졌고 설상가상으로 자궁암까지 겹쳤다. 자궁을 적출한 유순 씨는 산후조리도 하지 못한 채 아이를 등에 업고 신장 투석을 위해 19년 동안 병원을 전전했다.


한 번 아픈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은 채 계속 무너졌다. 오랜 신장 투석으로 유순 씨의 뼈는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얼마 전 원인 모를 발목 통증으로 다리 절단 위기까지 놓였다. 오른쪽 다리 뼈 일부가 으스러져 이제 목발 없인 걷질 못한다.
"멀쩡하던 몸이 왜 한순간 이렇게 된 걸까요"
유순 씨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새 없었다.


◆ 불어나는 병원비로 가족과도 이별, 날로 커지는 딸에 대한 그리움
무너진 건 유순 씨의 심신뿐만이 아니었다. 병치레 탓에 의료비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돈은 가족마저 해체시켰다. 대출했던 돈은 거침없이 불어나 유순 씨 가족은 빚 독촉과 차압에 시달렸다. 시댁 식구와 친정 식구들의 도움도 한계가 있었다. 너무 자주 돈을 빌린 탓에 이제 가족들은 자신의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옮긴 새 직장은 얼마 가지 않아 부도가 나버렸다.


생활고로 부부는 다툼이 잦았다. 유순 씨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 모든 고통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결국 지난해 남편과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유순 씨에게 하나뿐인 딸 이혜영(가명‧21) 씨는 아픈 손가락이다. 하나뿐인 자식이지만 아프다는 핑계로 넉넉히 해준 게 없다. 서울의 한 직업전문학교에 홀로 돈을 벌며 공부하던 딸은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겨우 사람 몸 하나 뉠 수 있는 고시텔에서 먹고 자며 새벽 1시까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공부했지만 코로나19로 모든 게 막혀 결국 다시 구미로 돌아와야 했다. 학비 하나 대주지 못하는 엄마는 딸을 볼 낯짝이 없다고 했다.


유순 씨는 파산을 앞두고 있다. 빚만 자그마치 1억원. 집은 곧 경매에 넘어가 유순 씨는 갈 곳이 없게 된다. 도시가스, 수도요금 등 관리비마저 내지 못해 단전, 단수를 앞둬 엄마는 구미로 내려온 딸을 집으로 부를 수 없었다.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 집에 얹혀 살고 있지만 유순 씨는 미안한 마음에 딸에게 마음 편히 전화 한 통 잘 걸지도 못한다. 마음속에는 딸에 대한 그리움만 쌓여간다. 적막감이 감도는 차가운 집. 유순 씨는 오늘도 어서 떳떳한 엄마가 돼 딸과 함께 살 날만을 몰래 그려본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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