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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가명‧39) 씨의 출근길은 늘 땀 한 바가지와 함께 한다. 일반 직장인들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제시간에 일터에 도착할 수 있다. 안면이 무너져 내리면서 왼쪽 눈이 실명돼 남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봐야 하는 탓이다.


가방 하나를 짊어 메고 일터로 나서는 길. 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등에는 벌써 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도착한 지하철 환승구에는 계단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한숨부터 나온다. 눈이 잘 안 보여 자칫 발을 잘못 내디디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기영 씨는 생명줄 같은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한 발짝씩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대구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공공근로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기영 씨는 등짝이 완전히 젖은 채로 하루를 시작한다.


◆ 난치성 신경섬유종으로 흘러내리는 왼쪽 얼굴, 놀림이 일상이던 삶
기영 씨의 어린 시절은 불행과 좌절이 연속이었다. 생후 100일이 지나서부터 얼굴은 이상하게 변해갔다. 왼쪽 얼굴 피부는 밑으로 계속 처졌다. 흘러내린 이마 피부는 왼쪽 눈을 덮었고 입도 좌우가 완전히 비뚤어져 음식 섭취도 어렵게 됐다. 병명은 신경섬유종. 한 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차도는 없었다.


얼굴은 늘 놀림거리였다. '괴물', '도깨비'… 남들과 얼굴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비난은 일상이었다. 조용한 아이라고 들을 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기영 씨에게 거침없이 반말과 욕설을 퍼부어댔다. 대학생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모두 나를 싫어하겠지' 타인에게 먼저 다가갈 용기도 가지지 못한 채 기영 씨는 외로움이 가득 서린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해방구는 노래방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음속 응어리를 쏟아냈다. 그렇게 구겨진 마음도 찬찬히 펴나갔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신경 쓰지 말자' 기영 씨는 귀에 내다 꽂히는 아픈 말들을 흘려버리기 위해 수없이 연습했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길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어렵기만 한 수술, 평범한 삶 살고파
기영 씨 엄마 이혜숙(가명‧64) 씨는 먹고사는 게 힘들어 아들의 고통을 미리 보듬어주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다. 혜숙 씨는 34년 전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세 남매를 키우기 위해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아픈 아들은 두 딸에게 맡겨 두고 식당 설거지, 건물 청소부, 파출부를 전전했다.


엄마에게 더 짐이 될까 기영 씨는 속마음을 숨기기 바빴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기억 속에는 밝은 모습의 아들뿐이다. 요즘도 기영 씨는 엄마를 위해 퇴근길에 고기 한 덩이는 잊지 않고 꼭 사 온다. 그런 아들이 너무 고맙고 대견하지만 엄마는 아들을 편히 바라볼 수 없다. 아들은 지금껏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성인이 되고서야 뒤늦게 털어놓은 말이었다. 꽁꽁 혼자 싸매온 아들의 회한에 엄마는 억장이 무너진다.


수술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무너진 왼쪽 얼굴에 뼈를 다시 넣어 복원을 하는 대수술이 필요하지만 비용은 1억원에 이른다. 월 170만원, 월 150만원의 엄마와 기영 씨의 수입만으로는 차마 꿈꿀 수 없는 비용이다. 시집간 누나들도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남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누나들에게 차마 또 손을 벌릴 수 없다.


기영 씨는 그저 남들처럼만 평범하게 살고 싶다 했다. 공무원에 수년째 도전하고 있지만 낙방만 여러 번. 그렇지만 기영 씨는 꿈을 포기 않는다. 반듯한 얼굴로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가정도 꾸리고 싶다. 자식들에게 손을 안 벌리려 아직 건물 청소부로 일하는 어머니의 고됨도 하루빨리 덜어드려야 한다.


저 멀리서 아른거리는 평범한 일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자 기영 씨는 오늘도 가방끈을 꽉 부여잡고 일터로 향한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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