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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착한 아빠가 있는 친구들이 너무 얄미워"

올해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 지율이가 놀이터에서 또 친구를 때렸다.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 오원주(가명·39) 씨가 '자꾸 말썽 피우면 엄마랑 같이 못 산다'고 아이에게 엄포를 놓자 지율이는 그만 울분을 토하고 만다.


"엄마는 왜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서 나를 낳았어? 차라리 내가 세상에 없는 게 속 편했을 것 같아. 엄마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철없이 밝게만 자라도 모자랄, 고작 8살인 아이 입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원주 씨는 서럽게 우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함께 한참을 울었다.

◆ 아이 앞에서 폭력 일삼던 남편, 지난해 딸과 도망쳐

2008년 지인과의 모임에서 만난 남편. 원주 씨는 어린 시절부터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는 그이에게 유난히 마음이 이끌렸다. 자신과 비슷한 모습이 보였던 것일까. 이미 한 번의 이혼 이력이 있던 그이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원주 씨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명의 자녀가 있는 남편에게 시집갔다. 내면 깊숙한 곳 슬픔을 안고 있는 그를 사랑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잘 해내고 있는 줄 알았다. 전처의 자녀들도 원주 씨를 잘 따랐다. 4년 후 남편과 원주 씨 사이에서 딸 지율이도 태어났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였다. 남편은 점점 변해갔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건 모두 원주 씨 탓이라며 폭언을 퍼부어댔다. 폭언은 폭력이 됐다. 아이들을 불러 세워놓고 그 앞에서 아내를 때렸다. 하지만 원주 씨는 신고조차 못 했다.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기에 제발 애들 보는 앞에서만 때리지 말라 남편에게 빌었다.


그런 남편을 유일하게 말릴 수 있었던 전처의 자녀 아들과 딸은 지난해 대학 진학으로 타지로 떠났다. 남편의 횡포는 더 거세졌다. 지난해 9월, 여느 때와 같이 남편에게 맞고 있던 원주 씨. 7살 지율이는 홀로 그 모습을 고스란히 쳐다봐야 했다. '지율아 엄마 괜찮아' 잔뜩 겁을 먹고 떨고 있는 아이에게 원주 씨는 눈짓을 보냈다. 본인이 울면 화난 아빠가 엄마를 더 때릴까 지율이는 손으로 제 눈을 필사적으로 막은 채 울음을 삼켜내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원주 씨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남편이 잠든 사이 모녀는 짐도 챙기지 못한 채 집을 나왔다.


◆ 가정폭력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딸, 엄마는 죄책감 시달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얻은 자그마한 원룸에서 엄마와 지율이는 새 삶을 시작하고 있다. 이제 둘이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건만 아이의 마음은 병들어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걸까. 지율이는 좀처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얼마 전 놀이터에서 자신의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다른 아이를 때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다. 소중한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에게 복수해주고 싶었다던 지율이. 원주 씨는 '예쁘게 커야 한다'며 타일러보지만 아이는 좀처럼 가정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원주 씨는 그런 아이를 어떻게든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생계비는 중국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받은 월 150만원으로 해결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를 꽉 채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지만 돈은 좀처럼 모을 수 없다. 남편이 사업을 한다며 원주 씨 명의로 대출금을 빌려 5천만원의 빚도 떠안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원룸마저 남편에게 노출됐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하지만 30만원 남짓한 월세와 생활비를 쓰고나면 남는 돈이 없다.


남편이 이혼해주지 않아 완전한 결별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지금이 천국이랬다. "모진 수모를 다 겪었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라고 세상이 등 떠미나 봐요"라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날리는 그녀. 슬프기만 했던 원주 씨 삶의 이면에 어떤 단단함이 느껴졌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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