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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끊고 살았던 친정 엄마에게서 5년 만에 연락이 왔다. "많이 아픈데 도와줄 수 있을까…" 안부 인사 대신 엄마가 꺼낸 첫 말이었다. 23살 때 혼전임신을 한 전재영(가명·30) 씨. 당시 엄마 이정인(가명·50) 씨는 결혼을 반대했지만 재영 씨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택했다. 부모는 그 후로 재영 씨와 연락을 끊었다. 그런 엄마가 암에 걸렸다며 불쑥 나타났다.


재영 씨는 아무 말 없이 엄마 곁으로 갔다. 이미 재영 씨는 남편과 이혼해 홀로 아이 김태환(가명·8) 군을 키우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모녀는 아무 일 없듯 병간호에 집중했다. 그러던 올해 초 정인 씨가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해준 것 없이 피해만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다. 혹여나 내가 잘못되더라도 꼭 잘 살아야해"

모녀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 부모 반대 무릅쓰고 선택한 결혼, 잦은 퇴사 일삼던 남편은 가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갑작스레 아이가 찾아왔다.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는 연락을 끊겠다고 했다. 아이를 포기할 순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시작한 결혼 생활. 하지만 생활은 그리 순탄케 흘러가지 않았다.


당시 7살 연상이었던 남편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 공장, 식당 주방 등을 전전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한 곳에서 6개월 이상 일을 지속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재영 씨가 "자신이 일을 대신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자존심이 상한다"며 되레 재영 씨에게 핀잔을 줬다.


잦은 입·퇴사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재영 씨는 야간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남편이 퇴근하면 아이를 맡겨둔 뒤 PC방, 음식점을 전전했다. 하지만 녹초가 돼 돌아온 집에서 매번 마주한 모습은 홀로 놀고 있는 아이 뒤에서 자는 남편의 모습뿐이었다. 그렇게 갈등을 빚다 결혼 5년 만에 남편은 집을 나갔고 둘은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아들과 새 출발을 위해 재영 씨는 자격증을 따며 재기를 준비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연락이 끊겼던 엄마가 연락이 왔다. 자궁에 혹이 생기고 유방암에 걸렸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뿐인 외동 딸 재영 씨와 연락을 끊은 뒤 친정 부모도 잘산 건 아니었다. 부부는 갈등을 계속 빚어오다 갈라선 지 오래였다.


◆ 아들과 친정엄마 돌보느라 부족한 24시간, 돈은 못 버는데 생활비는 줄줄

요즘 재영 씨는 쉴 틈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 태환이를 학교에 보낸 후에는 엄마 집으로 곧장 달려가 병간호에 집중한다. 오후 늦게야 돌아온 집에선 아들의 식사를 챙기고 못다 한 집안일을 마저 한다. 또 일주일에 삼 일은 항임치료와 표적치료를 위해 엄마를 데리고 2시간 거리의 타지로 가야한다.


당장 돈을 벌 시간은 없는데 수술비와 생활비는 줄줄 새어 나가기 바쁘다. 이리저리 빌린 대출금만 해도 1천500만원이다. 엄마를 매일 돌봐야하기에 취직도 어렵다. 아르바이트라도 알아봤지만 코로나19로 편의점, PC방 등은 좀처럼 일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양육비라도 받아볼까 전 남편에게 연락을 해보면 "태환이 키울 형편도 안 되는데 왜 데리고 있냐, 내가 키우겠다"는 엄포만 돌아와 양육비 소송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고작 8살인 아들은 그런 엄마가 힘들까 세탁일, 집안일을 알아서 돕는다. 날이 추운 날에는 핫 팩을 미리 엄마 이부자리에 넣어놓고는 "엄마 자기 전에 이렇게 해두고 자면 따듯해"라며 엄마를 챙기기도 한다. 하지만 한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의 편견은 모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홀로 외롭겠다'는 남들의 따가운 시선에 아이가 상처입지 않을까 재영 씨는 어딜 가든 한부모 가정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고 했다.


재영 씨는 항상 본인과 함께할 미래를 그려주는 아들을 보며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당장 살기가 힘들어 한 치 앞을 그릴 수 없는 엄마 옆에서 태환이는 "엄마 내년에는 우리 꼭 같이 여행가자, 그때까지만 버티자"라고 힘을 준다. 그렇게 둘은 하루하루 새로운 희망을 그려내며 버티고 있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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