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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안했다'

7년 전 이혼한 남편이 올 1월 메시지 하나를 보내왔다. 남편의 알코올 중독으로 오랜 갈등을 빚어온 김하선(가명·43) 씨. 세 명의 딸을 둔 부부는 이혼 후 첫째와 둘째는 남편이, 막내는 하선 씨가 각각 키우고 있던 터였다.

며칠 뒤 시댁에서 연락이 왔다. 남편이 사고사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넘어져 머리를 돌에 부딪쳤다고 했다.

7년 만에 엄마와 같이 살게 된 첫째와 둘째.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줄걸. 네 식구는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중이었다.

◆ 알코올 중독 남편과 이혼, 딸들 보고파 매일 밤 울던 엄마

친정아버지를 너무 닮은 남편이었다. 하선 씨는 어릴 적부터 알코올 중독에다 엄마에게 손찌검해대는 아버지가 죽도록 싫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결혼 후 엄마의 삶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절망적이었다. 하선 씨 남편은 알코올 중독으로 매일 밖으로 나돌았다.

남편은 화가 나는 날이면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집을 나가기도 했다. 바람까지 피우는 탓에 시부모님과 남편을 찾으러 참 많이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런 남편을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식당 설거지 일을 전전했지만 되돌아오는 건 시부모님의 등쌀뿐이었다. 남편이 이렇게 된 건 모두 하선 씨 탓이라고 했다.

참고 참다 이혼을 결심한 하선 씨는 첫째와 둘째 친권은 받지 못해 막내만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시부모님의 거부로 첫째와 둘째를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 딸들이 너무 보고 싶어 매일 밤 울며 지내기를 반복했다. 아이들 곁에 있으면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혼 후 3년 뒤 다시 막내와 대구로 돌아와 첫째와 둘째를 몰래 만나며 지내왔다.

◆ 부모의 이혼으로 딸들 마음은 닫혀, 아빠의 죽음으로 죄책감 더해

이혼 후유증은 오롯이 아이들에게 갔다. 부모님의 이혼 후 첫째 배희주(가명·17) 양과 둘째 배희영(가명·14) 양의 마음의 문은 꽁꽁 닫혔다. 엄마가 떠났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 욕을 계속해댔다. 학교도 가기 싫었다. 학예회, 운동회에 오는 친구들의 엄마, 아빠가 너무 부러웠다. '엄마랑 다 같이 살면 안 돼?' 마음속으로 수만 번 외쳤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어차피 안 될 걸 알았기에 어린 딸들은 상처를 속으로만 꾹꾹 삼켜왔다.

그런 딸들에게 아빠의 죽음은 너무나 충격이었다. 특히 희주는 죄책감에 많이 시달린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아빠와 갈등을 빚어온 탓에 아빠의 죽음이 꼭 자신의 탓인 것만 같다. 학교를 관둔 희주는 요즘 집에서 도통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학교에 다시 나가고 싶지만 학교에 잘 적응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자신이 없다고 했다. 희영이도 학교를 관두고 어서 빨리 돈 벌 방법을 찾겠다고 해 엄마와 갈등을 빚고 있다.

네 식구는 현재 하선 씨 지인의 집에 얹혀 공동생활을 하는 중이다. 미용실 스텝으로 일하며 받는 하선 씨의 월 60원의 소득과 기초생활수급비 60만원으로 네 식구가 버텨왔지만 월세, 대출,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눈치가 보여 희주는 또 다른 엄마 친구 집에 살다 주말에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중이다.

다행히도 희주는 얼마 전 청소년 지원센터의 도움으로 하고 싶은 공부도 찾았다. 지난해부터 네일, 뷰티 과정 직업훈련프로그램을 마치고 자격증 취득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200만원 가까이 되는 학원비를 감당할 길이 없자 포기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 "어차피 돈 없어서 못 해요"라는 희주의 말에 옆에 있던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만다.

희주는 인터뷰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그런 딸이 안쓰러운 엄마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 딸들 하고 싶은 공부도 시켜주며 잘살아 보겠다"며 희주를 꼭 안아줬지만 희주는 도통 몸을 움직이질 않았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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