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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복도, 재수도, 운도 없는 놈인기라."

대구 달서구의 한 외진 골목에 위치한 빌라. 왜소한 체격의 정희창(가명·79) 씨가 '복, 재수, 운'을 한탄하는 사이 분홍색 모자를 쓴 아내 신애영(가명·77) 씨가 곁에 앉는다. 초점 없는 눈, 반쯤 벌어진 입, 머리가 곧 바닥으로 고꾸라질 듯 휘어버린 허리. 지난 77년간 인생의 고단함이 담긴 모습이었다.


희창 씨 품 안에는 손주 정선우(가명·8) 군이 발버둥 치고 있다. 그만 풀어달라고 온몸으로 저항 중이다. 겨우 할아버지 팔에서 벗어난 선우는 바닥에 널브러진 가방으로 조르르 달려가더니 가방 고리를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어댄다. 선우는 자폐증이 있다.

하나뿐인 아들네가 낳아놓고 방치해둔 손주,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는 아들. 세상은 유독 노령의 부부에게 모질게 굴었다.


◆ 첫 아이까지 잃으며 견뎌왔지만…남은 건 가난뿐

온갖 노점상을 하며 살아온 부부. 지난 1987년 6살 난 첫아들을 눈앞에서 잃었다. 아들은 길을 걷다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그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본 아버지는 도망가는 차량을 쫓아갔다. 쫓고 쫓다 되돌아온 병원 응급실. 아들은 흰색 천에 둘린 채 누워있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보상금이 전해졌지만 아이의 목숨값을 차마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부부는 동네를 떠났다.


새로 터를 잡은 달서구에서 부부는 세상이 떠미는 대로 살았다. 이듬해 둘째 아들이 태어났고 죽은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았다. 노점상을 이어가며 돈도 차곡차곡 모았고 불우 이웃도 도우며 수십 년을 견뎌냈다. 10년 전 구청의 노점상 정리 사업으로 부부는 오랜 일을 그만두게 됐다.


가세가 기울어진 건 그때부터였다. 둘째 아들은 성인이 됐지만 군대 제대 후 돈을 잘 벌지 못했다. 사실 일을 꾸준히 못 했다. 첫 회사에서 월 200만원도 못 벌게 되자 그 길로 사표를 쓰고 계속 나돌았다. 그러다 대뜸 갑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희창 씨가 모아둔 돈을 모조리 가지고 독립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왔을 땐 텅 빈 손과 아이를 밴 한 여인뿐이었다.


그렇게 넷의 동거가 시작됐지만 며느리는 아이를 낳고 돌이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갔다. 희창 씨의 결혼반지와 목걸이를 훔쳐 달아났다. 아들은 지금까지 방황 중이다. 새벽녘에 들어와 아침 늦게 집을 나서지만 무얼 하는지 희창 씨는 알 길이 없다.


◆ 자폐 손주 키우고 있지만 버거워, 아내마저 치매 증상

아들네가 방치한 손자 선우의 육아는 오롯이 노부부의 몫이 됐다. 선우는 엄마가 떠난 후 이상행동을 보였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매일 밤 울었다. 치료를 받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의사의 설명을 모두 알아 듣긴 어려웠다.


자폐와 발달 지연 판단을 받고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지만 손주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선우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데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바깥 활동도 어려워 아이는 온종일 집에서 온갖 물건을 잡아 뜯고 물고 뛰어다닌다.


설상가상 아내 애영 씨마저 얼마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였다. 현관 비밀번호도 기억하지 못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렇게 노부부는 매일 선우를 붙들고 집에서 멍하니 하루를 보낸다.


아들과 손주, 치매 앓는 아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희창 씨는 삶이 너무 버겁다. 그 역시 이미 척추 2개는 괴사해버렸고 간경화와 피부병에 몸이 성치 않다. 생활비는 선우의 장애 수당과 아동수당, 부부의 노령연금이 전부. 부양 의무자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도 선정되지 못해 월 6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선우의 기저귓 값, 각종 공과금, 반찬값을 쓰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아내의 치매 치료, 희창 씨의 간경화· 피부병 치료는 꿈꿀 수 없다.


희창 씨는 삶의 의지를 자꾸 잃어간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삶을 그만둘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냥 바다에 확 뛰어들고 싶어예. 선우 저놈이 눈에 밟혀서…"라던 희창 씨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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