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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온몸 구석구석 파고드는 지난겨울의 어느 날. 대구의 한 안과 앞 횡단보도에 부자(父子)가 손을 꼭 쥐고 섰다. 아버지 하우식(50) 씨 옆에는 아들 정수(가명·23) 씨가 눈을 꼭 감고 있다. 정수 씨는 막 병원에서 망막에 고인 피를 빼고 나온 참이었다.


"아버지 저는 여기까지인가 봐요…."

앞이 보이지 않는 정수 씨가 입을 뗐다. 그 말을 들은 우식 씨의 마음은 '쿵'하고 내려앉는다. 괜히 아들의 머리를 헝클이고 손을 이끌어 횡단보도를 건넌다.


시각 장애인인 우식 씨. 본인의 장애를 닮아버린 아들을 보니 꼭 자기 잘못인 것만 같다.


◆ 왼쪽 눈 실명된 아버지, 아들도 시력 잃어

우식 씨는 16살 때 왼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병명은 망막이 쉽게 말려 떨어져 버리는 망막박리증. 결혼 후 태어난 아들 정수 씨도 12살 때부터 같은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이 뿌옇게 보인다'라는 아들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은 병원에서 아들은 같은 병명을 받았다. 정수 씨도 왼쪽 눈 시력을 잃었다.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던 우식 씨는 삶이 막막했다. 아내는 정수 씨가 여섯 살 때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공장에서 짐을 나르는 일을 했던 우식 씨는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됐다. 집마저 경매로 넘어가 버린 탓에 우식 씨의 부모님 댁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시어머니가 못살게 구는 탓에 아내는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


그래도 우식 씨는 남은 아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며 대출금을 갚아나갔다. 하지만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좀처럼 이들에게 다정치 못했고 아들도 그런 할머니를 피해 이사를 하자며 졸라댔다. 우식 씨는 아들을 데리고 원룸에서 10년간 지내며 버텼다.


◆ 오른쪽 눈마저 실명 위기에 놓인 아들, 치료할 돈 없어

시력을 잃은 정수 씨는 좀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는 실명이 놀림거리가 됐고 중학생 시절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번은 남의 휴대전화로 소액결제를 해버려 고소까지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식 씨는 아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곧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오겠지 싶어 아들 뒷바라지를 하며 묵묵히 그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소원이 통한 걸까. 정수 씨는 성인이 된 후 마음을 차츰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생 시켜 미안했다며 이제부터 본인이 아버지를 챙기겠다'고 당당하게 나섰다. 정수 씨의 방황에는 엄마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이 컸었다. 엄마의 사랑을 한창 받을 여섯 살 때 엄마가 곁을 떠나 외로움이 컸던 것이다. 그런 그는 이제 마음을 다잡고 시각 장애인 학교에 다니며 '심리 상담가'라는 꿈을 꾸고 있다.


본인과 같이 방황하는 친구를 돕고 싶은 정수 씨지만 꿈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 오른쪽 눈마저 곧 실명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치료와 수술을 받을 수도 없는 처지다. 우식 씨가 5년 전 강직성 척추염으로 일을 못 하게 되면서 기초생활수급비 90만원이 이들 소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부자는 조금이라도 실명을 늦춰보고자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았지만 정기 검진과 수술이 있는 날이면 한달 생활비 90만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최근엔 복지단체의 도움을 받아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주거비 부담은 덜었지만 서울행 한번이면 경비가 많이 깨지는 탓에 우식 씨는 허리를 더욱 졸라맬 수밖에 없다.


학교 기숙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아들을 위해 우식 씨는 홀로 집에 남아 아무리 추워도 보일러 한번 켜지 않고 생활비를 아끼고 있다. 행여나 난방비가 많이 나와 아들이 검진을 받지 못할까 이불을 꽁꽁 싸매면서 지난겨울을 버텼다.


정수 씨 역시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본인의 눈으로 인해 없는 형편에 돈을 자꾸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또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면 정수 씨는 더 이상 치료를 안 받겠다며 아버지를 설득해본다. 우식 씨는 "괜찮다"며 아들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의 실명을 늦추고자, 아들은 아버지를 더 고생시키지 않고자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고 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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