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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겨울, 대구 북구의 한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한 단칸방.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들어오는 어두운 방 안에 박정애(가명·48) 씨가 앉아있다. 옆에는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갓난아기 연우(가명·13)가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심야전기보일러를 사용해야 하지만 이를 돌려줄 집주인은 아직 귀가 전이다. 살이 에는 추위에 정애 씨는 연우를 이불에 감싸 놓고 잽싸게 슈퍼에 가서 소주 3병을 사와 연달아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렇게라도 추위를 버텨볼 심산이었다.

◆ 폭력으로 멍울진 결혼생활

정애 씨는 결혼에 한 번 실패를 겪었다. 23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한 결혼. 남편은 폭력이 심했고 함께 살던 시부모님마저 "그러지 말라"는 말 한마디만 던진 채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아이가 생겼지만 남편의 폭력은 줄어들 줄 몰랐다. 그래서 살기 위해 갓난아이와 함께 도망쳤다. 남편의 눈을 피해 낯선 곳에 집을 구했지만 얼마 못 가 남편에게 그만 들켜버렸다. 남편은 아이와 모든 살림살이를 빼앗아 갔다.


친정 엄마는 "소주 한잔 먹고 잊으라"고 했다. 하지만 자식을 쉽게 지울 수 있는 엄마는 없었다. 정애 씨는 술과 함께 일 년을 폐인처럼 지냈다. 지나가던 아이만 보면 딸 생각이 났다. '저만큼 컸겠지….' 잊어버리지 않는 이상 더는 못 살 것 같았다. 그 길로 백화점의 한 의류매장에서 죽어라 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10년이 흘렀고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 재혼을 했다. 한 번쯤은 단란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별다를 바 없었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에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왔고 정애 씨에게 손찌검을 했다.


사달은 어김없이 남편이 술에 취한 날에 일어났다. 새벽녘에 돌아온 남편은 술이 덜 깬 채로 아침 일을 나간다고 했다. 정애 씨가 문 앞을 가로막자 남편은 정애 씨를 그대로 계단 밑으로 밀어버렸다. 그때 정애 씨 배 속에는 산달이 다 된 아이가 있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아이를 지켜야 했다. 남편에게 이별을 통보한 뒤 아이와 함께 집을 나왔다.


◆ 지체 장애 딸, 엄마마저 신장 아파

딸 연우는 손과 하체가 불편하다. 양다리는 길이가 맞지 않은 데다 발은 안으로 굽어들어 걷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굽어버린 척추로 어깨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지 오래다.


아이를 홀로 낳은 정애 씨. 분유마저도 살 돈이 없어 쌀뜨물을 갓난아이 입속에 넣으며 힘든 시절을 버티고 또 버텼다. 연우는 100일이 다 됐지만 손가락 대신 손등을 빨았다. 손가락도 쉽게 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연우의 엄지손가락에 인대가 없다고 했다. 정애 씨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연우가 네 살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한 번 더 찾아왔다. 하지 외반변형으로 연우는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계단에서 구른 그날이 문제였다. 의사는 그때 아이가 경기를 했고 손과 다리 신경이 모조리 다쳤다고 했다.


친정 부모는 연우를 입양 보내라고 했지만 정애 씨는 친정 가족과도 연을 끊고 아이를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연우는 다리 수술이 계속 필요했고 정애 씨는 전단을 붙이는 등 돈을 벌러 나섰지만 수술비는 좀처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주위에 빌린 빚만 1천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엄마는 좋은 병원이란 병원은 수소문해가며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덤볐다.


그러는 사이 정애 씨의 몸도 망가져 버렸다. 4개월 전 정애 씨는 신장의 사구체에 이상이 생긴 'IgA신증'에 걸렸다. 스테로이드 약물 복용으로 몸은 심하게 부어버렸고 손과 다리에는 마비가 오는 등 정애 씨는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한다. 이달 말 아이의 수술이 한차례 더 잡혀 있는데 수중에 있는 돈은 기초생활수급비 80만원이 전부이고 당장 아이의 병간호도 어렵게 돼 엄마는 마음이 급하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봅니다. 내가 안 아파야 우리 연우 번듯하게 키우는데…"라던 정애 씨는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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