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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의 어느 밤 대구의 한 원룸 건물. 삶에 의욕을 잃어버린 서혜미(가명·58) 씨는 세상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펑'

얼마 뒤 큰 폭발음이 났다. 구멍 낸 가스통에 작은 불꽃이 튀면서 불이 붙었다. 불은 순식간에 서 씨 몸을 덮쳤다. 다행히 이웃의 신고로 서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몸에 화상을 가득 입은 그 순간에도 서 씨는 구급대원에게 제발 병원에 데려가지 말라고 사정했다.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병원비도 없었다. 그만큼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 다섯 살 아들은 화상입고 지적장애


참 외로운 삶이었다. 23살의 나이에 결혼했고 아들 한 명을 뒀다. 하지만 남편은 알코올 중독이 심했다. 월급을 받아도 하루 만에 술로 돈을 다 써버렸다.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서 씨는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큰 가방을 하나 짊어진 채 시장에서 옷을 팔았다. 결국 아들이 다섯 살이 되던 해 아이 아빠와 갈라섰다. 하지만 아들은 남편에게서 데려오지 못했다.


이혼한 지 채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어느 날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들이 놀이터에서 놀다 몸에 불이 붙었다는 소식이었다. 동네 형들과 불장난을 하던 중 불꽃이 그만 아이 옷에 튀어버렸던 것이었다. 아들은 치료 중 통증을 참지 못해 뇌 정지가 왔다. 피부 이식은 마쳤지만 그 후 3년간 아들은 식물인간으로 살았고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제정신으로 살지 못한 건 서 씨도 마찬가지였다. 똑 부러지던 아들이 한순간에 망가졌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밥을 제대로 먹기는커녕 비명을 지르다 쓰러지는 날이 일쑤였고 정신없이 찬장에 기대어 있다 유리가 깨져 손목 힘줄이 끊어져 버리기도 했다. 폐인이 된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던 터라 아이를 다시 보낼 수도 없었다. 친정엄마와도 불화는 계속 생겨 갈등은 이어졌다.

잠시라도 아이와 떨어져 살면 괜찮을까 서 씨는 그 길로 고향이었던 서울을 떠나 경북의 한 시골 마을로 거처를 옮겨 마음 정리를 해나갔다.


◆ 친정엄마는 치매…곁에 남은 가족 없어


서 씨는 간병인으로 일했다. 몸서리치게 무서웠던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방법이었다.

새로운 거처에서 나름 적응을 해갔지만 혼자 있는 삶은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한밤중 널어둔 빨래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서 씨는 온몸을 움츠렸다. 자존감도 함께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너무 외로워 재혼을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이런 나를 누가 받아줄까'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그 길로 누군가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간병인을 직업으로 택했다. 그렇게라도 곁에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서 씨의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건 4년 전 친정엄마에게 치매가 찾아온 뒤부터였다. 엄마의 건강이상 소식에 서울로 다시 올라간 서 씨는 엄마와 아들을 돌봤다. 하지만 엄마의 치매는 나날이 심해졌고 손주도 못 알아봐 오히려 괴롭히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일마저 제대로 할 수 없던 상태에 놓인 서 씨는 도와주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사기와 보이스피싱까지 당했다. 오히려 범죄자 취급까지 받아버려 경찰서에 불려 가기까지했다. 결국 복지사들의 도움으로 엄마는 요양원에, 아들은 경기도의 장애인 시설에 입소했다.


2천만원의 빚만 떠안고 지난해 11월 대구로 내려온 서 씨. 시설에 있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간병인 일을 계속했지만 2개월 만에 손목이 부러지면서 일이 끊겼다. 빚은 갚아야 하는데 당장 월세마저 낼 돈이 없다. 곁에 남은 가족도 더는 없다. 서 씨는 외동에다 친정아버지는 어릴 때 서 씨와 엄마를 두고 도망갔다. 엄마는 새 남편을 만났지만 그는 어린 서 씨에게 성폭행을 일삼아 10년 만에 갈라선 터였다. 악순환 속 이젠 1천만원의 병원비까지 쌓여버렸다.


그렇게 차츰차츰 삶의 의욕을 잃어간 서 씨. 그런 그는 한참 뒤 "살고 싶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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