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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시작한 미혼모의 삶이었다. 장예원(가명·34) 씨는 남자가 자주 바뀌는 엄마가 싫어 중학생 때 가출했다.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 경기도를 전전했고 가출 청소년을 돌봐준다는 한 나이 많은 남성의 집에 거주했다. 그러다 열아홉에 아이가 생겼다. 나이 많은 남자는 외면했다. 당장 고향으로 내려가라며 장 씨를 쫓아냈다.

4년 만에 찾은 집. 엄마는 이미 새 아빠와 살고 있었고 혼나지 않으려면 임신 사실을 숨겨야 했다. 이미 불룩해져 버린 배를 감추려 복대로 배를 둘둘 감았다. 그러다 이복동생에게 그만 임신 사실을 들켜버렸다. 비밀로 해달라고 빌었지만 엄마와 새 아빠 앞에서 이복동생은 장 씨의 옷을 걷어 올려 복대를 풀어버렸다. "애를 배려고 가출했느냐"는 부모의 비아냥거림이 산달이 다 될 때까지 따라다녔다.

◆ 미혼모 시설서 출산, 다시 시작한 노숙

장 씨는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 아이를 낳기로 했다. 엄마도 새 아빠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임신해 장 씨와 출산시기가 겹친 터였다. 홀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막막함보다 식구들의 눈치가 더 싫었다. 그렇게 스무 살의 어린 여성은 건장한 남자아이를 세상에 데려왔다. 새 아빠의 마음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빠였지만 시설에 있는 동안 알게 모르게 장 씨를 챙겼다. 장 씨의 응어리졌던 마음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선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장 씨의 엄마는 본인의 아이를 장 씨에게 떠넘기고 밖으로 나돌았다. 쌓이는 육아 스트레스에 엄마와의 갈등도 잦았다. 그렇게 가족과 관계는 다시 멀어졌다. 장 씨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아이는 양육시설로 보냈다. 장 씨는 역과 PC방 등을 떠돌았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삶.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것일까. 장 씨는 밖으로 떠돌다 온라인 채팅에서 만난 박한수(가명·현재 나이·45) 씨에게 마음이 갔다. 그 역시 지적장애에다 허리 질환으로 일도 제대로 못 하는 등 온전치 못한 삶은 산 터였다. 둘은 만나 가정을 꾸렸고 세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장 씨는 시설에 있는 첫째 아이와 박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함께 돌봤다.

◆ 자녀 불장난으로 집 모조리 타

다섯 식구는 원룸에서 거주 중이다. 복지관의 도움으로 들어간 임대주택에서 지난 6월 큰불이 발생하면서 집이 모조리 탔다. 둘째 영아(가명·11)가 라이터로 그만 불장난을 해버린 것이다. 거주할 곳이 없던 이들은 경로당과 교회 시설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떠돌았고 얼마 전 복지관의 도움으로 원룸을 얻어 이사를 오게 됐다.

주머니 상황도 여의치 않다. 박 씨는 지적 장애로 말이 어눌하고 심한 허리 통증으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통증이 심해 매번 병원에서 타온 진통제를 가득 입에 털어 넣는다.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비 150만원과 장 씨의 온라인 개인 방송을 통해 얻는 몇만원의 수입이 전부. 집안 대대로 무속인 집안인 장 씨는 무속인의 삶을 거부한 엄마 대신 어릴 적에 신내림을 받았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고자 시작한 게 신점과 타로를 봐주는 개인 방송이다.

돌봄이 시급한 건 아이들이다. 둘째 영아와 넷째 영서(가명·8)는 아토피가 심하다. 셋째 영유(가명·9)는 태어날 때부터 기관지 천식을 앓고 있어 몸이 약하다. 게다가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데다 언어가 또래보다 늦어 치료와 학습 도움이 필요하지만 돈이 없다. 그리고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 씨의 첫째 아들에게도 꾸준히 돈이 들어가야 해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방법을 모르겠다. 장 씨는 나름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책임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불행만 겹친다. 어둡고 좁은 원룸 방 안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장 씨 부부. 그 침묵 속엔 방황하는 가족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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