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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의 한 병원 침상에 누운 김태진(27) 씨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겨우 받은 전화기 너머 큰 형의 흐느낌이 전해진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었다. 


김씨는 미칠 것만 같았다. 당장 몸을 일으켜 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지만 김씨의 두 팔과 다리는 움직이질 않는다. 침대에서 떨어져 굴러서라도 가고 싶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급성 식도암에 걸린 아버지, 김씨는 사지가 마비된 탓에 임종도 못 본 채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다.


◆ 레슬링 그만두고 생계 전선으로

지난해 12월 추운 겨울이었다. 경기도의 한 기계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는 코로나19로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실직했다. 큰형이 있는 구미의 한 공장에 면접을 보기 위해 경기도에서 내려왔다. 심야 버스를 타고 도착한 형 집. 추운 날씨 탓이었을까. 2층인 형의 집 계단을 오르던 김씨는 그만 미끄러져 난간 밖으로 떨어져 버렸다.

눈을 떴을 땐 이미 병원이었다. 김씨는 뒷목과 척추가 골절되면서 사지 마비가 됐다. 불과 몇 시간 전 멀쩡하던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는 건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렇게 병실에 누워 숱한 밤을 자책과 후회를 반복하며 보냈다.


어릴 적부터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날품을 팔면서 김씨 삼 형제를 키웠다. 운동을 좋아했던 큰형과 작은형을 따라 김씨도 레슬링 특기생의 길을 걸었다. 형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운동을 그만두고 돈을 벌러 타지로 떠났고 김씨도 대학 자퇴 후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부모님께 부담을 주기 싫었다. 레슬링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과에서 진행되는 행사로 돈이 나갈 곳이 많았다. 온종일 운동에 집중해야 하는 탓에 아르바이트도 못 하던 김씨는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하는 것도 미안했다. 그렇게 청년은 운동을 포기하고 공장으로 향했다.


◆  큰형 보이스피싱, 병원비 없어 퇴원 못 해

사고 이후 불행만 자꾸 겹쳤다. 급성 식도암에 걸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큰형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 김씨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대출금을 빌리려다 일이 잘못 돼 버린 것이다.


1천만원이 넘는 병원비에다 재활치료비까지 합쳐지니 지급해야 할 돈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하지만 어머니의 날품 노동으로 번 돈으로는 병원비를 갚아나갈 수 없는 상태였다. 결혼한 큰형과 작은형은 형편이 넉넉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대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기로 빚만 두 배 더 늘어났다. 김씨는 병원비를 내지 못해 퇴원할 수 없는 상태다.


가족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지켜봐야 하는 김씨는 더 고통스럽다. 재활 치료로 손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아직 상체와 하체는 굳어있다. 계속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탓에 욕창도 심해졌고 기저귀에다 용변을 봐야 한다. 기저귀는 금세 떨어지기 일쑤지만 형한테 차마 사달라고 말하기조차 힘들다. 매번 기저귀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서야 뒤늦게 형에게 연락을 건다. 어머니 역시 코로나19로 병원 출입이 막히게 되면서 김씨 곁으로 올 수 없다.


퇴원한 뒤에도 걱정이 크다. 김씨는 본가가 있는 포항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지만 돈이 없어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으러 다닐지도 불확실하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은 해뒀지만 선정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김씨는 '꼭 일어서겠다'고 다짐을 한다. 떠나는 아버지를 못 본 게 한이 돼 버린 김 씨는 꼭 직접 아버지의 유골을 강에 뿌리고 싶다. "엄마가 너 꼭 기어 다닐 수 있게라도 만들어줄게"라는 어머니의 말도 김씨는 가슴에 새겼다. 그런 가족을 위해 김씨는 마음을 다잡는다.


레슬링 특기생 시절, 끈기 하나는 자신이었다던 김씨. 언젠가 올 걸을 수 있는 날을 위해 김씨는 오늘도 아픈 재활 치료를 꾹 참아낸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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