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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도 이런 집에 살아봤으면…'

아파트 청소 일을 하는 배미영(가명·61) 씨는 매일 달콤한 상상에 잠시 젖어 든다. 넓고 깨끗한 집에서 요리하고 남편과 딸, 아들은 거실에 편안히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맛있는 음식이 놓인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달콤한 상상에 배 씨의 입가엔 금세 미소가 피어오른다.


오후 8시 넘어서야 들어온 집은 상상 속 모습과 정반대다. 논과 밭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배 씨의 집. 배 씨는 매번 풀숲을 헤치고 이름 모를 산소를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지적장애 아들로 인해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이곳으로 온 지도 어언 25년째. 비닐로 된 문을 열면 아픈 남편, 지적 장애아들, 대인 기피증이 심한 딸이 집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 야구 선수 남편, 아프고 사고 잦아

남편 도주영(가명·60) 씨는 한때 유망 받던 야구 선수였다.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야구 코치 길로 접어들려고 하던 차 합의가 잘 안 되면서 코치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그 뒤로부터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당장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었고 하는 수 없이 타지 생활을 접고 가족과 함께 30년 전 고향 경북으로 내려왔다.


고향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책임져야 할 식구는 더 늘었지만 이상하게도 일이 꼬였다. 취직한 한 기계 공장에서 기계에 손이 끼여 손가락 일부가 절단 돼 버렸고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치며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선수 시절 잦은 부상으로 어깨와 허리도 이미 망가져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가족들을 위해 다른 일들을 찾아 나서기를 반복했다. 아내 배 씨 역시 식당, 청소 일에 나서며 손을 보탰지만 기울어진 가세는 좀처럼 되돌리기 어려웠다.


없는 형편에 이사도 참 많이 다녀야 했다. 심한 지적장애가 있는 큰아들 때문이었다. 아이가 학교 수업에 집중을 못 하자 학습 환경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다른 학부모들의 항의도 잦았다. 그런 아들이 혹여나 친구에게 맞고 돌아오진 않을까 배 씨와 도 씨는 매번 마음을 졸여야 했다. 집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탓에 이웃들의 눈총도 따가웠다. 그렇게 주위의 손가락질을 피해 정착한 곳이 논 한가운데의 집이다.


◆ 딸은 성추행, 아들은 저장 강박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바르게 컸던 딸은 자꾸만 '죽고 싶다'라고 한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누구보다 밝고 꿈 많던 딸은 성인이 된 후 자꾸 방 안에만 숨어들었다. 도통 이유를 알 수 없던 배 씨는 최근에서야 딸이 스무 살 때부터 가계에 도움을 보태려 나선 마트, 호프집 아르바이트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가 충격을 받고 속상할까봐 혼자만 끙끙 앓던 딸은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본인의 방에서 이불을 꾹 덮어쓰고 나날이 고통 속에서 지낸다.


집도 이제 발 디딜 곳이 없다. 30대의 큰아들은 어느 날부터 저장 강박으로 쓰레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바깥을 돌아다니며 온갖 폐지를 주워오는 탓에 집은 온통 폐지로 뒤덮여 있다. 남은 방마저도 폐지로 가득 차 이들은 현관에 임시로 설치한 비닐하우스 천막과 나무 마루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생활한다. 쓰레기를 치우고 싶지만 건드리기라도 하면 아들이 난폭하게 변하는 탓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이사는 꿈도 못 꾼다. 소득은 배 씨가 벌어오는 130만원이 전부다. 월세를 내고 먹거리를 사고 나면 그야말로 남는 돈은 없다. 도 씨 역시 빨리 일자리를 구해보려 하지만 성치 못한 몸의 도 씨를 받아주는 곳이 잘 없다. 네 명의 식구는 어두컴컴한 집에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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