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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우리 평생 이렇게 함께 있으면 좋겠다"

함께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조카의 말에 고모 김정임(가명·72) 씨의 마음이 괜히 짠해진다. 정임 씨는 동생네의 딸 4명을 홀로 돌보고 있다. 남동생 김희용(가명·62) 씨는 암으로 요양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고 동생의 아내는 도망간 지 오래다.


조카들이 어릴 적부터 올케가 집을 자주 나간 탓에 사실 정임 씨가 조카들을 제 자식처럼 키워온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제 점점 힘에 부친다. 동생의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이미 빚진 돈만 1억원인 데다 첫째와 셋째 조카는 아프다.


◆ 집 나가버린 베트남 아내

김희용 씨는 함구증을 앓고 있어 사회생활을 잘하지 못했다. 40살이 넘어 뒤늦게 베트남에서 온 아내와 식을 올렸고 네 명의 딸을 얻었다. 하지만 아내는 시댁 식구들에게 자꾸만 돈을 요구했다. 그러다 7년 전, 베트남에 잠시 다녀온다며 나선 집, 아내는 그 길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김 씨와 10살, 9살, 8살, 6살의 딸만 덩그러니 남았다.


하염없이 엄마만 기다리던 딸들에게 아내는 계속 상처를 남겼다. 아내가 떠나고 1년 뒤, 동네의 한 음식점에서 아내가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 씨는 막내를 데리고 부랴부랴 식당으로 나섰다. 딸의 모습을 봐서일까. 그곳에서 셋은 부둥켜안고 울었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1년 사이 250만원의 빚도 져 시댁에서 아내의 빚도 모조리 갚아줬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아내는 또 사라졌다.


그렇게 또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아내는 셋째 딸에게 연락했다. 경기도의 한 어묵 공장에서 일하던 중 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게 된 것이었다. 새로운 남자는 불법 체류자였기에 아내는 김 씨의 호적에 아이를 올리기 위해 딸에게 아빠를 설득해달라고 말을 했다. 그 길로 김 씨는 아내와 갈라서기로 마음먹었다.


◆ 악성 림프종으로 시한부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한 탓이었을까. 올해 5월 김 씨는 목에 통증을 자주 느꼈다. 병원에서 김 씨는 '악성 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하필 그날 몸 상태도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그만 심정지까지 왔다. 겨우 살아난 김 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버티고 있으나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기도로 숨을 쉴 수가 없어 폐에 인공 튜브를 끼워뒀고 어느덧 몸무게는 35㎏까지 빠져버렸다.


그런 김 씨와 네 딸을 감당하는 건 오롯이 누나 정임 씨 몫이다. 그는 이미 네 명의 조카를 본인의 자식처럼 키우고 있지만 조카들이 커갈수록 힘에 부친다. 특히 첫째는 지적장애에 함구증을 앓고 있어 고모 이외의 사람과는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어 학교생활도 어렵다. 또 뇌전증과 빈혈까지 앓고 있어 고모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들다.


셋째는 간경화에 학습장애를 앓고 있다. 한번은 언니와 동생을 챙기느라 바쁜 고모를 대신해 아빠 간병을 잠시 맡았는데 이를 본 학교 선생님들이 아동학대라며 고모를 학교에 불러 다그치기도 했다. 정임 씨는 답답함만 더해진다. 간병인이라도 쓰고 싶지만 그만한 돈이 없다. 물품 재생 공장을 운영하던 그였지만 10년 전에 부도가 나 이미 억대의 빚을 떠안고 있던 터였다.


어떻게라도 돈을 벌기 위해 본인의 아들과 힘을 합쳐 공장을 끌고 나가고 있지만 수입은 월 130만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남동생의 병원비와 조카 양육을 감당하긴 무리다. 대학병원에서의 치료비는 하루 150만원에 육박해 얼마 전 하는 수 없이 저렴한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아들 역시 빠듯하게 자기 식구를 데리고 살고 있기에 도와 달라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그런 아들은 정임 씨가 걱정돼 '절대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하지 마라'고 하지만 도저히 조카를 외면할 수 없다. 이미 엄마에게 버림받아 상처가 큰 아이들에게 또 상처를 줄 수 없다. 정임 씨는 그렇게 삐쩍 마른 몸으로 남동생과 조카를 챙기려 오늘도 열심히 뛰어다닌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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