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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무더위 속 철에 맞지 않는 패딩을 입은 두 사내가 대구 북구의 한 동네 골목 어귀 사이로 들어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골목 맨 구석에 자리 잡은 집. 대문을 열면 현관엔 뼈만 앙상하게 남고 등이 굽어버린 어머니 최남순(가명·80) 씨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사내들은 형제다. 형 정철호(가명·53) 씨와 동생 정철규(가명·51) 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지만 사실 세 명 모두 한 집에서 각자의 인생을 사는 중이다. 동생 철규 씨는 조현병에 어머니 최 씨는 쇠약해 기력이 없다. 형 철호 씨는 대인기피증이 심하다.


◆ 정신질환 앓는 형제

동생 철규 씨에게 조현병이 온 건 군 복무 시절 일어난 폭행 때문이었다. 철규 씨는 제대 후에 계속 혼자 중얼거리는 일이 잦았다. 없던 폭력성도 생겼다. 철규 씨는 화가 나면 현관문 유리를 발로 차 깨트렸다. 시간이 얼마 지나서야 철규 씨는 군 복무 시절 선임들에게 구타당한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놨다. 하지만 다들 먹고 살기 바빠 병원 치료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게 철규 씨는 집 안에만 숨어들었다.


형 철호 씨 역시 학창 시절 때부터 집중력이 좋지 않았다. 잠시 품었던 '교사'의 꿈도 이루긴 어려웠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 아버지는 슈퍼마켓 장사를 했지만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후 직장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정리해고를 자주 당했다. 그 역시 집 안에만 머물게 됐다. 게다가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심해져 대인기피증과 정신질환까지 의심된다.


그런 아픈 형제를 노령의 부부가 돌보기는 힘들었다. 경비원 일을 하며 생활비를 책임지던 아버지는 20년 전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그 후 가세도 급격히 기울었다. 기초생활수급비 7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인 이들은 더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방치되던 셋은 몇 년 전 동 주민센터의 복지사에 의해 발견됐다. 외부인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몇 개월간의 끈질긴 설득 끝에 철규 씨는 조현병 치료를 시작했다. 입원을 권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 그는 집을 떠날 수가 없다.


◆ 무너지기 직전인 집

여전히 이들의 하루는 집에서 시작해 집에서 끝난다. 형제는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거실 밖으로도 나오질 않는다. 거실에는 노모만 덩그러니 앉아 시간을 보낸다. 최 씨 역시 관절염이 심했지만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놓친 탓에 일어서기가 힘들다.


철호 씨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고자 온라인 광고 부업을 시작했다. 버는 수익은 월 10만원. 하지만 이는 본인이 매달 인근 학교의 학생 식당에서 점심 한 끼를 사 먹고 나면 없어진다. 동생과 어머니를 돌봐야 하지만 그에겐 버거운 일이다. 그런 철호 씨를 돕고자 복지사는 심리 치료를 권했지만 거부감이 심하다.


세상에 발을 좀처럼 내딛기 어려운 이들에게 유일한 안식처인 집마저 이들을 보호하기 어렵게 됐다. 오랜 노후화로 천장은 내려앉고 벽지엔 곰팡이가 다 슬어 온갖 벌레가 튀어나온다. 거실 창문은 깨져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습기가 가득해 위생 상태도 엉망이다. 무엇보다 비가 오는 날 거실은 그야말로 수영장이 된다. 천장에서 마구잡이로 떨어지는 빗물에다 거센 바람이라도 부는 날엔 천장이 심하게 흔들거린다. 보일러는 고장 난 지 오래라 겨울에 가족은 외투를 입고 추위를 버틴다.


오랜 생활고로 이들에겐 더 이상 삶의 의지마저 생기지 않는다. 집이 엉망임에도 이사는 꿈도 못 꾼 채 이곳에서 죽을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사실 형제에겐 큰누나 한 명이 있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동생,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최 씨 역시 딸에게 빌린 300만원을 갚지 못해 얼굴을 들 수 없다며 아예 연락할 수조차 없다.


그렇게 셋은 나아질 길이 보이지 않는 삶의 궤도선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같은 자리를 떠도는 중이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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