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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논이 즐비한 대구 외곽의 한 동네 길가. 엄마 방진화(가명·43) 씨가 느린 발걸음으로 아들 윤우(가명·14)가 탄 휠체어를 민다. 가로수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윤우의 얼굴에 드리운다. 매일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윤우는 잠깐의 외출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그렇게 도착한 한 초등학교 앞. 하교 중인 딸 윤진(가명·9)이 엄마와 오빠를 향해 뛰어온다. 셋은 왔던 길을 되밟아 다시 집으로 향한다. 윤진이를 데리러 외출을 다녀오는 이 40분이 윤우의 하루에 허락된 유일한 외출 시간이다.


◆ 가정에 소홀한 남편과 이혼

방 씨는 강한 엄마가 돼야 했다. 윤우가 태어난 지 2개월 되던 날, 폐렴이 와 방 씨는 급히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발견된 건 뜻밖의 병이었다. 윤우는 비정상적으로 간 수치가 높았고 유전자 검사 끝에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근이영양증'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윤우가 걷지도 못할뿐더러 20살 때까지밖에 못 산다는 독한 말을 퍼부었다. 이를 쉽게 받아들일 엄마는 없었다.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남편은 가족을 도통 신경 쓰지 않았다. 술을 좋아했고 월급의 전부를 술에 쏟아부었다. 게다가 시어머니마저 방 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미워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흉을 남편에게 퍼부었고 남편도 점점 방 씨가 탐탁지 않았다. 그러던 중 둘째가 생겼다. 남편은 더욱 가족을 방치했고 매번 술을 마신 뒤 늦은 귀가를 반복하다 결국 사달이 났다. 말다툼은 가정폭력으로 변했고 방 씨는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가정을 지키고자 방 씨는 참기로 했다. 남편과 헤어지면 두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스트레스보다 더 무서운 건 '돈'이었다. 우울증과 무기력함이 방 씨를 감싸왔지만 버티고 버텼다. 그러다 3년 전 겨울, 남편은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방 씨는 그만 비참해지기로 했다.


◆ 아픈 아들, 딸 홀로 돌봐

두 아이를 살리려 방 씨는 몇 년을 기계처럼 일만 했다. 낮에는 아픈 아들을 돌봐야 했기에 그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잠든 밤뿐이었다. 그는 집에 설치한 CCTV 하나에 의지한 채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나섰다.


돈은 좀처럼 모이질 않고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윤우의 재활 치료로 도심으로 자주 나와야 해 차비라도 아껴볼까 겨우 보증금 500만원을 구해 시내로 집을 옮겼다. 하지만 높은 월세에 좁은 집은 이들을 더욱 괴롭혔다. 방 씨는 일을 더 악착같이 해야 했고 아이들은 좁은 원룸에서 몸 하나 편히 눕지 못하며 지내야 했다. 휠체어를 타는 윤우에게 집은 너무나 좁고 불편한 곳이 돼 갔다. 전 남편은 양육비조차 주지 않았다. 최저시급만 월세와 생활비, 교통비를 모두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방 씨의 몸은 점차 따라주지 않았다. 사실 몸이 성치 않은 건 엄마와 딸도 마찬가지였다. 방 씨는 천식을 앓고 있지만 어려운 형편에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병원에선 효과가 좋은 비싼 약을 권했지만 방 씨는 늘 보험이 되는 저렴한 약물치료를 받아야 했다. 딸 윤진이는 어릴 때부터 쓸개에 붙어있는 작은 관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상태가 심각해 패혈증 직전까지 간 윤진이는 설사와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


셋은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중이다. 최근 좋은 집 주인을 만났다. 좁은 집을 벗어나 다시 저렴한 방이 있는 대구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최근 방 씨의 천식 상태가 나빠지면서 이제 기초생활수급비 140만원에 의지해서 사는 중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학원을 가는 것도 이들에겐 사치다. 더군다나 윤우는 학교에 다니기 어려워 집에서 방문 수업을 받고 있기에 더욱 바깥 생활과는 단절됐다. 윤우는 굳은 다리에 대한 재활 치료도 받아야 하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멈춘 지도 오래다. 그런 아이들을 하염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는 매일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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