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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8년 전 커다란 소나무가 유병철(가명·54) 씨 몸 위를 덮쳤다. 나무 무게에 못 이겨 골반은 틀어졌고 발목은 완전히 꺾였다. 장기 파열까지 일어나 의사는 가족들에게 마지막 준비를 하라고 했다. 유씨는 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하반신이 마비돼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유씨는 절망할 시간이 없었다. 그때 겨우 세 살 된 딸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눈을 질끈 감고 재활 치료에 목숨을 걸었다. 하루 내내 어떻게든 걷기 위해 운동을 했다. 유씨의 두 다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배신으로 점쳐진 삶

배신과 불행이 이어졌던 유씨의 삶에서 유일한 희망은 딸 지아(가명·현재 나이 11) 뿐이었다.

경기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유씨는 지난 2009년 농사일을 같이 해보자던 지인의 제안에 경북의 한 시골 마을로 내려오게 됐다. 마침 식당도 운영난으로 그만둬야했던 차 자금 1천만원만 가지고 오면 된다는 지인의 말에 새로운 희망을 안고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1년 만에 지인은 태도를 바꿨다. 자신이 일을 더 많이 한다며 계속 지분을 많이 요구했고 빚만 잔뜩 남긴 채 둘은 갈라섰다.


다시 경기도로 올라갈 순 없는 실정이었다. 그 길로 유씨는 산에서 소나무를 심고 산을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팀을 꾸려 작업을 진행했지만 팀원들은 유씨가 일을 너무 꼼꼼히 한다며 배척하기 시작했다. 꼼꼼한 소나무 관리가 필요하지만 현장 감독 역시 대충 일을 했다. 계속 협박을 받던 유씨는 팀에서 나왔고 농사 품팔이를 하며 돈을 벌러 다녔다.


경북으로 내려온 그때 아내를 만났고 둘은 사실혼 관계에서 딸을 낳았다. 하지만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유씨는 사고마저 당하게 돼 버렸고 지적장애가 있는 아내마저 농사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생활비를 벌어오거나 집안일, 육아는 모두 아픈 유씨의 몫이었다. 둘은 4년 전 별거를 시작했다.


◆ 단칸방서 생활, 딸은 성추행 당해

유씨와 딸이 사는 집은 경북의 한 종택 별당인 단칸방이다. 아내와 갈라서고 쌓여가는 빚, 성치 못한 몸으로 기초생활수급비 53만원을 받고 생활하는 부녀가 마음 편히 지낼 집은 잘 없었다. 수소문 끝에 한 종택을 관리하며 별당인 작은 방에 지낼 수 있는 곳을 마련했고 인근 작은 밭을 얻어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밭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불행은 계속 이들을 덮쳤다. 지난 7월 딸 지아는 방학을 맞아 엄마의 권유로 부산에 있는 결혼한 의붓언니 집에 며칠간 방문하게 됐다. 유씨와 재혼을 했던 아내는 이미 성인이 된 두 명의 딸을 둔 상태였다. 그때 지아를 그곳에 보내지 말아야 했다. 의붓형부는 어린 지아를 성추행했다. 지아 역시 아빠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했고 뒤늦게 학교 선생님에게 털어놓은 피해 사실에 유씨의 억장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고소하고 싶어도 힘들게 결혼한 의붓딸의 가정을 또 쉽게 망가트릴 수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다행히도 지아는 철이 일찍 들어 밝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아빠에게 마음을 털어놓기가 힘들어 속으로만 견뎌내는 건 아닌지 걱정이 크다. 또 인적이라곤 드문 캄캄한 단칸방에 밤늦게까지 딸 아이 혼자 둬야 하는 것도 마음이 쓰인다. 홀로 밭일을 해야 하는 탓에 지아는 학교를 마친 뒤 매일 단칸방에서 게임을 하며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학원도 보낼 수가 없다. 형편도 안 될뿐더러 시골 산골짜기에 위치한 집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런 지아를 어떻게든 잘 키우고 싶은 유씨는 매일 고군분투 중이다. 딸에게 아직 짐을 짊어주기 싫어 집안일도 시키지 않는다. 이른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유씨는 홀로 집안일을 하고 지아와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딸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생활 속 커가는 딸의 뒷바라지 생각에 마냥 웃음만 지을 수 없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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