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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손을 놓고 싶어, 놓아 버리고 싶어….'

아들 박재훈(가명‧33) 씨와 손을 잡고 멍하니 걷던 엄마 한주원(가명‧57) 씨의 마음이 요동쳤다. 한 씨의 손엔 서서히 힘이 풀렸다. 아들과 맞잡은 손은 이내 떨어지고 한 씨는 제자리에서 몇 분을 멍하니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땐 이미 아들은 없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아들을 찾아야 했다. 인근을 다 뒤졌지만 아들은 없었다. 경찰에게 연락하고 한참을 울고 있던 그때 아들을 찾았다는 전화가 왔다. 박 씨는 몇백 미터를 홀로 걸어갔던 참이었다. 그는 조현병이다.


◆ 성추행 당해 조현병 판정

14년 전 아들이 서울의 유명대학 최종 면접을 앞둔 하루 전, 그때 아들과 함께 서울을 갔어야 했다. 아들은 친구와 서울에서 방을 빌렸다. 하지만 그날 밤 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면접 내내 하룻밤 사이의 일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들은 대학에 떨어졌고 집으로 돌아온 뒤 방 안에서만 지냈다.


대구의 한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도통 적응을 하지 못했다.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친구들과 쉽게 못 어울렸고 따돌림까지 당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집, 아들은 누군가가 자꾸만 자기를 죽일 것 같다고 했다. 길을 걷다가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해코지할 것 같다며 분노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조현병 판정을 받았다.


따뜻한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한 아들이었지만 아빠는 자꾸 그를 나무랐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은 아들에게 폭력을 자주 행사했다. 조현병 판정을 받을 때조차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의사에게 협박까지 일삼았다. 남편이 워낙 무섭게 군 탓에 한 씨마저 그를 말릴 수조차 없었다. 그런 남편은 보증을 잘못 서 한 씨네 식구는 빚더미에 앉게 됐고 10년 전 남편은 폐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 폭력 일삼는 아들로 고통

빚만 가득 짊어진 채 자녀와 남겨진 한 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제일 두려운 건 아들의 폭력성이었다. 아들은 기분이 수도 없이 왔다갔다했다. 갑자기 한 씨가 외계인이라 죽여야겠다며 벽으로 밀치거나 본인이 죽어야겠다며 창가로 향하는 탓에 한 씨는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빚쟁이에 쫓기다 사는 지금의 집 베란다도 온갖 짐으로 가득 찼다. 아들이 언제 뛰어내릴지 몰라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현관문은 매일 열어둔다. 아들이 제어할 수 없는 난동을 부릴 때 한 씨는 살기 위해 그 문으로 도망쳐야 한다.


14년간 이 같은 삶을 지속해온 한 씨의 마음도 엉망진창이다. 너무 힘들어 삶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지만 남은 아이들을 위해 쉽게 떠날 수도 없다. 또 자신이 떠나면 딸이 오빠를 홀로 돌봐야 한다. 딸도 오빠에게 맞아온 탓에 집에서 같이 생활하기가 힘들어 대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집안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답답함만 더해진다.


이런 그들에게 불행은 계속 겹쳤다. 얼마 전 그만 한 씨가 보이스피싱을 당하면서 600만원의 빚이 생겼다. 기초생활수급비 11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인 이들에게 600만원은 너무 큰 돈이다.


무엇보다 한 씨는 없는 형편에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산다. '죽어'라는 환청도 들리기 시작한다. 늘 아들의 기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웃으며 살던 한 씨였지만 이제 억지웃음마저 지어지지 않는다. 집 밖으로도 나오기 싫은 한 씨는 매일 죽음과 관련된 영상을 보거나 강가의 다리에 올라가며 다 놓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산다.


단 하루만이라도 걱정 없이 편히 쉬고 싶다는 한 씨.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진 오래지만 자꾸 아들과 딸이 눈에 밟힌다. 아들이 남에게 피해를 줄까, 딸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이 크지만 그런 아들을 돌볼 수 있는 것은 한 씨 본인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시 잡아보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는 삶의 출구에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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